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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주소를 진단한다(통독 3년… 명과 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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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현주소를 진단한다(통독 3년… 명과 암:상)

입력
1993.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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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균형 완화 “최대난제”/“실업률 40%”… 피해의식 점증/동/막대한 통일비용 지불 “불만”/서오는 3일로 독일은 통일 3주년을 맞는다. 환희의 눈물이 넘쳤던 통일의 현장에는 「하나의 게르만」이 되기 위한 오시(동독인)와 베시(서독인)의 처절한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다. 통일 3주년을 맞은 독일의 현주소를 세차례에 걸쳐 진단한다.<편집자주>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1백60㎞. 구 동독의 공업도시 라이프치히로 가는 아우토반은 덜컹거렸다. 곳곳에서 고속도로 재포장공사와 확장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차선은 3차선에서 2차선으로,1차선으로 들쭉날쭉했다. 병목현상에서 꼬리를 문 차량행렬로 평소 2시간 거리를 3시간 이상이나 걸려야 했다.

동행한 사람이 말했다. 『고속도로도 통독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히틀러가 세운이래 그대로 두었으니 도로가 정상일리가 없지요. 베를린에서 구 동독으로 가는 길들이 보수공사로 난리입니다』

일요일인 26일 라이프치히 시내는 매우 평화스러워 보였다. 89년 동독의 반체제 민주화운동이 가장 뜨겁게 깃발을 올린 이 도시 시청앞에는 언제부턴가 벼룩시장이 섰다. 그 옆의 노천카페에는 부부와 연인들이 맥주를 마시며 간이무대의 연주회를 감상하고 있었다. 기다랗게 늘어선 노점상들과 기웃거리는 시민들은 자유와 시장경제를 구가하고 있는 듯했다.

벼룩시장에서 장식품 등을 팔고 있는 50세의 슈미트씨. 그는 한달에 7백마르크(약 35만원)의 실업수당을 받고 있다. 석물공장에서 일하다 통독후 주인이 바뀌고 전문기술자들이 서독에서 밀려오는 바람에 실직했다. 취미삼아 모았던 골동품을 내다팔며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를 포함해 길에서 만난 이 도시의 많은 시민들은 우선 먹고 살기가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의 불만을 말하고 싶어했다.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쉽게 표현한다면 『이게 아닌데』 『좀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감정이었다. 이는 동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지식인계층이든 노동자계층이든 논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구 동독 사람들은 분명히 지금 통일 3년후에 나타난 여러상황에 대해 실망과 불안,피해의식 같은 것을 얘기하고 있다. 이는 불만과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통일의 장미빛 약속에 이들은 속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숫자상으로 볼때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서독을 훨씬 상회하는 17% 수준. 그러나 실제 실업률은 40%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임금수준은 서독지역의 60∼70%,통독후 통일정부는 동독지역의 피폐한 경제재건을 위해 3천억마르크(1천8백억달러)를 쏟아붓고 「사회연대협정」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매년 1천억마르크를 서독인의 호주머니에서 충당할 것이지만 동서독의 전반적인 수준이 언제 평준화될지는 불확실하다.

아우구스트 광장으로 이름이 바뀐 카를 마르크스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통일정부가 공산체제를 심판하는게 아니라 그 체제의 단순한 희생물이었던 사람들까지 그들의 잣대로 단죄하려 한다고 불평했다. 『사회주의하에서의 국유재산은 엄밀히 보면 인민의 피와 땀이다. 이를 통일정부가 마음대로 사유화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일』이라는 그의 말은 흡수통일로 인한 동독 사람들의 심정적 단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이 자신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나눠주지 않으며 오만하다고 보고 있다.

아직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구 동독 유력지 「노이에스 도이칠란트」는 최근 『우리는 하나였다』라고 풍자했다. 서독인들은 동독인의 불만을 기본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그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바란다고 비판한다.

서베를린에서 만난 안데르슈씨(50·상인)은 『우리는 그들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 동독인들은 그들이 내린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불편하고 어려운 점은 우리고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리학자라고 밝힌 바우어씨(55)는 『경제적인 문제가 이렇게 크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경제적 갈등이 1차적으로 감정적인 골을 깊게 하고 있지만 우선 서로간 벽을 허무는 정책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독의 학자들간에는 최근 그동안의 통일에 대한 논란이 너무 정치 사회적으로 비용적 측면에서만 파악돼 동서간의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제는 통일의 장기적 이익과 희망의 공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것이다.<라이프치히=한기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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