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이 불효놈은 이렇게 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아직 살아계시지요? 몇해전 문익환목사가 북쪽에 갔을 때 열일곱 그렇게도 곱던 인숙이누님이 백발할머니가 되셔갖고 찾아와 내가 업어서 기른 우리 기완이가 정말 살아있습데까하고 우시면서 우리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셨더라는 이야기를 전해왔을 적입니다. 저는 『아니다』하고 소릴 질렀습니다. 그리고 대폿집마다 들르며 아주머니,문목사 이야기는 거짓말이죠 그렇죠? 우리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실겁니다. 이렇게 알지도 못하는 주모를 붙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저는 믿습니다. 이 기완이가 돌아오기전에 치가 떨려서라도 어찌 눈을 감으시겠어요.
어머니 정말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하고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어언 마흔여덟해만이군요. 그러니까 그때 제 나이가 열세살이었으니까 올해로 벌써 어머니가 아흔다섯이 되시네요.
그동안 굴뚝같은 남편과 아들 셋 그리고 아홉살짜리 인순이는 남쪽에서 살고 어머니만 홀로 계셨으니 밥은 누가 지어드렸으며 이불은 누가 깔아 주셨나요.
전쟁통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북으로 올라간 군인들이 어머니한테 왜 태극기를 안다시오 하고 윽박지르자 나는 남쪽에 있는 남편과 아들 딸을 기다리지 군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오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난의 어머니 모습을 퍼뜩 떠올리곤 저는 통곡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축구선수가 소원인 저에게 축구화 하나 얻어 신기시겠다고 맨발로 떠나보내시던 아 그 옛 살나비(고향) 언덕은 아직도 있을까요.
어머니,하지만 저는 축구선수는 못되었습니다. 돈이 없어 학교를 못다녀 재주를 살릴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그렇게도 타고난 왼재기였지만 공한번 못차보고 그대신 우리를 가른 외간놈들과 그 앞잡이들을 발길로 차느라 어느덧 저도 예순이 넘은 불효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렇게도 곱던 아홉살 인순이는 가기만하면 재주를 살릴 수 있다던 서울에서 국민학교도 못마치고 이제는 미학을 공부하는 딸과 아들을 둔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정말 우리 형제들은 몹쓸 불효놈들입니다. 기현이 형님은 6·25때 그만 육군 일등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최전선에서 보내온 글월마다 기완아,너의 형 이 백기현이는 동족의 가슴에 대고는 한방도 총을 쏠 수가 없구나,하고 몸부림을 치시더니 중공군 수류탄에 흔적도 없어지시고 기세이 형님은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서 이빨이 다 빠져 나오시고.
그러나 이 분단이란 우리 형제끼리 싸우도록 강요한 턱이지요. 갈라진 어머니와 아버지 인숙이누님과 그 귀염둥이 인순이가 갈려져 싸우고 있는 턱이란 말입니다.
이 기가막힌 일은 도대체 누가 꾸미는 장난일까요. 외간 것들과 그 앞잡이들이기에 어머니! 저는 출세보다는 주먹이 필요했습니다. 쌍도끼란 그래서 나온 제 별명이었습니다.
어머니,어머니께서 그렇게도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몇해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노상 옛살나비 어머니를 찾아가신다고 거리에서 쓰러져 인순이네집 주소를 적은 개패를 달고 다니시며 야 기완아,이 백땅놈의 새끼야 그렇게도 주먹이 세다고 하더니 그래 아직도 38선을 못부션? 하고 제멱다시를 잡으시곤 하시더니 한발자욱이라도 어머니 곁으로 가신다고 이참은 강화도에 누워계십니다.
하지만 어머니,어머니마저 눈을 감으시면 절대로 아니됩니다. 몇해전 저는 수사기관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열시간동안 넋살을 잃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무서운 지하실에서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홀로 두고 내 어찌 불효자식이 되랴,이거였습니다.
어머니! 오늘도 한가위 달이 휘어청 떴군요. 문득 뒷동산엘 올라가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올라도 올라도 달을 가까워지질 않고 아무리 달려가도 어머니 만날 길은 멀어만 가고 89년 북측이 저를 포함한 남쪽의 일곱사람한테 정치협상 회의를 제안했을 때 혹 어머니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도 막히고.
올해를 다시 넘기면 그대로 살아계실는지 믿기지 않는 아,어머니 세월….
비를 드시면 남의 집 마당부터 쓰시곤 해 그 마음이 백옥같으시고 기다리시되 안방에서 눈물짓질 않으시는 우리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이 기완이 효심으로 가진 것이라곤 이 피맺힌 통일의 깃발 밖엔 없습니다. 그것을 들고 저는 어머니 조객배를 향해 바다를 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거센 몰개(파도) 때로는 입을 허옇게 벌린 상어떼와 싸우며. 이번 한가위에도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 아버지 맞상을 차려놓고 이렇게 풍비박산이 난 분단의 현실을 울고 있습니다.
그 밥상에는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민어는 없어도 생선도 놓이고 그리고 그 옛날 왜놈 식민지의 밤을 까부수느라 들려주시던 우리 겨레 위대한 서사시 장산곶매이야기를 이참에 책으로 펴내 그것도 올려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머니 그저 살아만 계십시오. 혹 땅에 누우시더라도 절대로 눈을 감으시면 아니됩니다. 저도 효도 한번하고 늙고 싶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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