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국혼미 틈타 총공세/전 대통령 충성병력 반군 지원이 “결정적”구 소련의 그루지야내 압하스 반군들이 27일 치열한 시가전끝에 전략요충지인 수후미시를 장악,사실상 압하스 자치공화국의 분립독립을 쟁취했다. 수후미는 압하스 자치공화국의 수도일뿐 아니라 그루지야 정부군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때문에 반군들의 수후미 입성은 압하스의 분리독립을 저지해온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국가평의회 의장(국가수반)에게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셰바르드나제 의장은 수후미에서 12㎞ 가량 떨어진 굴립시로 피신해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주도하다 트빌리시로 귀환할 것으로 전해졌다.
수후미의 함락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진 것은 반군들이 러시아의 혼란을 틈타 총공세를 취했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는 그루지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그루지야 민족분쟁에 이중적인 자세를 유지해왔다. 그루지야정부측에는 공식적으로 무기를 제공,셰바르드나제 의장의 친러시아 노선을 지원하고 반군들에게는 러시아제 각종 무기의 유출과 러시아 용병들의 반군 참여를 묵인해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전황이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도록 무장개입을 경고하거나 평화협상을 촉구하며 현상을 유지해왔다.
이같은 국면은 옐친 대통령의 의회해산과 이에 따른 러시아의 정국위기로 무너졌다. 옐친 정부가 그루지야 사태의 변화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게 되면서 압하스군은 총공세에 나섰던 것이다. 여기에다 재집권을 노리는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 전 그루지야 대통령 세력이 압하스반군의 공격과 동시에 그루지야 정부군의 배후를 끊으며 대정부 공격에 나섰다. 양측이 독립과 재집권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힘을 합친 격이 된 것이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이를 두고 『감사후르디아 전 대통령에 충성하는 병력이 나를 배신했다』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사실 감사후르디아 세력은 압하스의 분리독립을 저지하는 그루지야 민족주의 세력이다. 압하스 분리독립 투쟁도 감사후르디아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에서 촉발됐을 정도다. 그러한 그루지야 민족주의 세력이 오히려 분리주의 반군을 결정적으로 도우고 말았던 것이다.
압하스의 본격적인 독립운동은 80년대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개방정책에서 비롯됐다. 압하스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연방에 가입해 그루지야의 지배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키워갔다. 91년 구 소련 해체후 그루지야가 독립을 선언하자 압하스 자치공화국 의회는 92년 7월27일 압하스의 독립을 규정한 1925년 당시의 헌법을 부활시키고 독립을 전격 선언했다. 그러나 그루지야정부는 압하스의 독립을 무력으로 저지했고 양세력의 무력충돌은 불가피했다. 압하스 반군은 현재 비밀리에 구입한 탱크,야포,항공기 등으로 강력한 화력을 확보하고 있다.
분할속의 분할로 치닫고 있는 그루지야사태를 진정시킬 유일한 세력은 러시아뿐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 보·혁간 관련투쟁으로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지원을 상실한 셰바르드나제로서는 평화협정을 통해 압하스의 분리독립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전망된다.<박희정기자>박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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