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한약분규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이 개탄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린 폭력성이다. 그 폭력성은 지난 3월 한의측에서 맹렬하게 불붙기 시작하여 전국의 한의대생 수업거부와 집단유급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빚었고,다시 약사들에게로 불이 옮겨 붙어 두차례의 휴업소동을 불렀다. 그리고 이번에는 검찰이 약사회장을 전격 구속했는데,휴업을 철회한 마당에 구속이라는 강경조치를 취한 검찰 역시 많은 사람들의 눈에 「폭력적」으로 비치고 있다.6공 출범과 함께 정권의 억압이 풀리면서 가장 먼저 터진 것이 노사분규였다. 수만,수십만의 근로자들이 농성·파업을 벌일 때마다 온나라가 몸살을 앓곤 했다. 노사분규가 몇년째 계속되면서 어느덧 대부분의 국민들은 근로자들의 집단행동을 이해하기보다 집단이 뿜어내는 폭력적 에너지에 공포를 느끼게 됐다.
이번에 한·약 양측이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싸우는 모습은 근로자들의 투쟁방식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망했고,우리의 민주역량을 스스로 의심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직업인들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어떤 무리한 투쟁도 불사한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성장하겠는가.
정부의 대응 역시 시종일관 국민을 실망시켰다. 보사부는 지난 80년 약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약국에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한다』(7조 7항)는 알쏭달쏭한 규정을 신설하여 한약조제를 금한다는 뜻을 빙빙 돌려 표현했고,13년후인 93년 3월5일에는 이 규정이 애매모호하고 이미 사문화됐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삭제했다. 이로 인해 한·약 분규가 다시 터지자 보사부는 이달초 약사법 개정시안을 내놓았는데,그 시안은 지금까지 한약을 조제해온 약국들에만 한약조제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 13년동안 보사부가 한·약 분규의 와중에서 한일은 서투른 땜질 뿐이다. 「재래식 한약장 의외의 약장」만을 두고 청결하게 관리하라더니 어느날 그 규정을 삭제하여 「재래식 한약장」을 합법적으로 놓을 수 있는 길을 터주었고,다시 분규가 일자 지금까지 「재래식 한약장」을 놓고 있던 약국만 계속 한약을 조제하라는 개정시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놓여있던 재래식 한약장이란 십중팔구 80년 개정된 약사법 시행규칙을 위반해온 약장일 가능성이 높다.
보사부는 그동안 「재래식 한약장」을 붙들고 씨름하느라고 의약분업이나 한의학 발전을 위한 기둥조차 세우지 못했다. 한의사와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가 워낙 원색적이고 폭력적이어서 보사부의 모든 무능은 뒤에 가려져 있었으나,보사부는 13년이란 긴세월을 결단을 미룬채 땜질만 해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각 집단의 이기주의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할 일인데,보사부는 집단이기주의를 탓하며 요리조리 헤엄만 치고 있었다.
정부는 옳은 방향으로 갈때 단호하고 강해야 한다. 그러나 보사부의 무능에 이은 검찰의 강경대응은 더욱 쓴웃음을 짓게 한다. 정부는 「구속」으로 강경대응할게 아니라 가정상비약의 슈퍼마켓 판매허용이나 의약분업 등에서 강경해야 한다. 검찰이 약사회장을 구속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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