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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총독부건물 철거 서둘자/손보기 단국대교수(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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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총독부건물 철거 서둘자/손보기 단국대교수(특별기고)

입력
199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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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그동안 풀지 못한 해묵은 숙제를 풀어가고 있다. 20세기가 끝나도록 겨레의 목숨을 죄고 가슴을 짓누르던 문제이다. 일제가 우리의 궁전을 부수고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자는 의도에서 세워진 총독부건물은 지금도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역사의식이 얕은 사람들은 훌륭한 건물이며 문화재의 하나라고도 한다. 국립박물관을 먼저 짓고 옮기자는 분들의 뜻은 알만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국보급의 문화재에 흠이 가면 안된다고 걱정을 하나 언제 박물관을 짓고 경복궁을 복원하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딱히 말이 없다.

총독부 건물에 대해서 1945년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가. 일제가 태평양전쟁으로 무너진 다음,바로 헐어야 한다고 온 겨레가 생각했지만 골수까지 뽑히며 살았던 우리에게는 헐 힘이 모자랐다.

일제는 우리의 값진 보물은 일본으로 빼돌리고 빈약한 유물만을 조선총독부 박물관 소장품으로 삼았었다. 그뒤 구 왕궁박물관의 보물급 유물들을 국립박물관에 합치게 되었고 박물관 유물에 올기는데부터 국립박물관의 이사는 시작되었다.

가장 큰 실수의 하나가 구 총독부건물을 국립박물관으로 보수 개조한 일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했으나 정부는 이를 무릅쓰고 강행하였다. 그 결과 일본이 지은 이 건물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국립박물관 하나 없다고 착각을 갖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물관에 가는 일이 잦은 편이라 가끔 일본인들이 우리 박물관을 구경하고 그 건물앞에서 총독부 건물이었다고 일본말을 하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서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한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일부에서는 총독부건물을 헐자는 주장에 대해 유물은 생각하지도 않고 헐기만 먼저 하려고 한다고 몰아세우며 박물관을 지은 다음에 헐어야 한다는 요지의 서명운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박물관의 현황을 대신 설명하고 싶다.

국립박물관의 현황은 아주 열악하다. 국립박물관의 예산중 유물을 살 돈이 일년에 1억원 밖에 안된다. 좋은 유물 한점 사기에도 모자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관,직원 모두를 합쳐도 2백30명에 지나지 않는다. 유물이 20만점에 다다르고 있음에도 일제 강점기에 모아놓은 선사유물의 정리에는 손을 댈 여유가 없고 우리나라의 자랑인 금속활자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유물의 보존·관리상태는 완전한가. 문화재는 재질·보존상태들에 따라 제각기 특수한 보존장치를 해야 한다. 미세기후·환경까지 생각하여 알맞게 보존 보호책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온도,습도,광선,공기밀도,균해들을 정기로 점검조사하고 필요한 진공장치,조절,처리 등이 과학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완벽한가. 이 점에 대해 현재의 국립박물관이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안다. 즉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 자체가 완벽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늘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옮겨 다녔었다.

따라서 지금이야 말로 새로운 박물관 계획을 세우고 새 박물관의 위상을 찾음과 동시에 민족정기를 위해 구 총독부 건물을 빠른 시일내에 철거해야 한다.

박물관을 제대로 세우자면 20년,30년 또는 50년 걸려야 마땅하다. 유물 목록을 정비하고 그를 분류하고 새 박물관에 맞는 전시계획을 세우고 하는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구 총독부건물을 마냥 그대로 두고 이미 정해진 경복궁 복원과 새 박물관 건립을 모두 늦춘다는 것은 큰 계획에 지장을 줄뿐인 것이다.

우리는 문민시대를 맞아 역사상 처음으로 참다운 박물관을 제대로 만드는데 힘을 합하여야 할 것이다. 국립박물관은 오늘날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사소한 원칙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다가 전제를 잃는 일이다. 「전체」란 구 총독부건물 철거를 뜻한다.

헐어야 한다는데는 의견이 같다. 시기문제를 놓고 대립되는 것 같으나 이 또한 바탕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물보존을 생각하자는 것도 서로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겨레의 정신문제 가치관 문제를 바탕으로 하여 힘을 합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달라지고 박물관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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