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기채매입 얼굴 드러낼까/더 깊숙한 음지찾아 숨을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기채매입 얼굴 드러낼까/더 깊숙한 음지찾아 숨을까

입력
1993.09.26 00:00
0 0

◎큰손들 심각한 고민/상속 증여계획·중기운영자 호감/상당수는 노출꺼려 탈출로 탐색/대부분 전주 손익따지며 “골머리”「신분을 드러내고 양지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수법을 개발해 음지로 좀더 숨어들것인가」 큰 손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10월12일 실명전환 만기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가운데 24일 정부가 「기명 장기채권」이라는 또 하나의 카드를 던지고 나옴에 따라 이 채권을 사고 떳떳하게 나서는게 좋을지 또 다른 기피수법을 찾아내 더 깊숙한 지하로 숨어들어가야 할지를 놓고 큰손들이 주판알을 열심히 퉁기고 있다.

「D데이 H아워」의 작전시간을 받아놓고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못짜고 있는 일선 지휘관의 심정이 꼭 이와 같을 것이라고 사채시장 관계자는 말했다. 다급해진 큰손들은 평소 서로 알고 지내던 금융기관 임직원들에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상담을 하거나 몇몇씩 만나 여러가지 대안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 및 사채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거액의 가·차명 예금을 가지고 있거나 사채시장에 수십억∼수백억원의 자금을 굴려온 「큰손」들은 정부가 실명제 보완대책으로 내놓은 「기명 장기채권」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명 장기채권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측은 큰손중에서도 신분노출보다는 자금출처 조사나 탈루세금 추징을 걱정하는 경우다. 이들은 대개 중소기업 등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사채놀이를 해온 사람들로 국세청의 자금출처조사를 당할 경우 사업체에까지 큰 피해를 당할 소지가 많은 경우들이다. 또 배우자나 자식에게 상속·증여를 하려는 사람들도 이 채권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장기채권을 사는 것과 지금 당장 증여를 하는 것중 실익이 있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10억원의 가명예금으로 10년만기 장기채권(연리 3%)을 사면 만기에 13억4천만원을 받게 된다. 반면 이 예금을 채권을 사지 않고 자녀명의로 실명전환(증여)할 때는 증여세 4억8천여만원을 당장 물어야 하는 대신 나머지 5억2천만원을 10년간 운용할 수가 있게 된다. 이 경우 10년간 운용수익률이 연평균 9.9%면 장기채권을 산것과 같은 13억4천만원을 10년뒤에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단순하게 수익성만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향후 금리예측이 어떠냐가 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수익면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채권을 살 경우 자금출처 조사나 세무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금융계 관계자들의 견해이다.

문제는 정부의 출처조사 면제발표를 과연 얼마나 믿느냐 하는 점이다. 자금출처조사를 안하겠다고 하지만 아무런 법적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몇년 뒤(현재 과셋이효는 상속세가 10년,증여세가 5년이고 내년부터는 모두 10년이다) 국세청이 자의적으로 세무조사를 하거나 탈루세금을 추징할 경우 법적으로 대응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과 불신이 과연 이번 조치로 말끔이 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따라서 큰손들중 상당수는 「기명 장기채권」의 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 다른 실명제 기피수법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익성은 그만두고 신분노출 자체를 꺼리를 공직자나 종교인 등의 검은 돈이나 대부분의 CD(양도성 예금증서) 예탁금은 아무리 출처조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채권에 매력을 못 느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차명예금의 경우는 현재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3천만원이상을 인출하더라도 출처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이상 차명 자체로 실명확인을 하고 얼마든지 예금을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최근 사채전주들이 수시로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환하거나 실명제 그물망을 빠져나갈 묘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강남과 명동 일대에서 1백억원대 이상의 거액을 굴려온 이들 큰손들이 각자의 사무실이나 호텔 커피숍 등에서 자주 만나 새로운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다. 골프나 등산모임을 통해 어울리면서 새로운 수법을 궁리하기도 한다. 사채업자인 Y모 사장이 참여하는 「K산악회」는 지난주말 서울 근교로 산행을 했는데 대화의 주제가 대부분 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위장전입이나 해외교포를 이용한 가명예금 인출,CD변칙할인,어음박치기,사채꺾기 등의 수법이 대개는 이러한 모임에서 연구돼 나온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김상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