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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면죄부/김상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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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면죄부/김상철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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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가 실시된지 한달 열흘 남짓만에 다시 실명제 보완대책이 나왔다. 실명제 실시이후 경제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온데 따른 후속조치이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금융실명제 후속조치」의 핵심은 10년 만기 기명 장기채권의 발행이라 할 수 있다. 과거를 밝히기 어려운 「구린 돈」이라도 이 채권을 사는 경우에는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실명전환을 하더라도 2억원까지는 출처조사를 하지 않으며 기업 비자금을 법인명의로 실명전환할 경우에도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겠다고 천명했다.한마디로 그동안 탈세와 부정의 씨앗이자 열매였던 「검은 돈」에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이번 조치로 실명제의 성격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현재 실명제는 당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사채시장이 한때 마비상태에 빠지고,이에 따라 영세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으나 정부가 영세기업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사채시장도 점차 회복돼 대량 부도사태 등 우려했던 부작용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부분적으로 자금흐름이 경색되거나 기업의 투자가 여전히 부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원인을 실명제에만 돌리기는 어렵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실명제의 맥을 바꿔놓는 보완책이 나왔을까. 대다수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실명제의 부작용을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이번 조치는 실명제의 실무를 맡고 있는 정부쪽보다는 정치적 논리와 이해관계에 더 영향을 받는 당쪽의 주장이 강하게 작용했다는게 뒷얘기이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보완대책이 불필요함을 강조해왔었다.

이번 보완대책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기명 장기채」의 발행명분은 검은 돈을 산업자금화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큰손들이 이 채권을 얼마나 사줄지 모를 일이다. 금융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 당장 세금을 물고 자식에게 증여를 하는 것이나 연리 1% 또는 3%를 받고 10년동안 돈을 묻어놓는 것이나 실익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번 보완조치가 부작용을 제거하는 효력은 거두지 못하고 실명제가 갈수록 후퇴한다는 인상만 심어줘 큰손들로 하여금 『또 한번 기다려보자』는 심리만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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