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8월 맨주먹으로 쿠데타군과 맞섰던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이번엔 보수파가 지배하는 의회와의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총성은 없지만,사실상 옐친 대통령과 의회의 보수파가 정치적 생명을 건 대결이다.그동안의 움직임으로 봐 옐친 대통령은 꽤 치밀하게 의회해산이라는 초법적 도박을 준비해온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16일 옐친 대통령은 경제개혁의 「설계사」라는 가이다르를 경제담당 제1부총리로 다시 앉힐 것이라고 밝혔다.
가이다르는 작년 12월 보수파들의 압력으로 실각했던 만큼 그의 복귀는 옐친정부가 의회의 보수파에 정치적 선전포고를 내민 것이었다.
옐친 대통령의 이번 도박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내린 결단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러시아의 한사람앞 국민소득(GNP)은 지난해의 경우 1년전보다 17%가 떨어졌다. 한달평균 인플레가 30%나 되는 초인플레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서방측에 지고 있는 빚이 8백억달러에,금년안에 1백50억달러를 갚아야 할 형편이다.
이처럼 산적한 문제를 앞두고 오는 25일 서방측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리고,이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연례 총회가 열릴 예정으로 있다. 옐친 정부로서는 지난 4월 서방측에 약속한 경제개혁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여줘야 할 처지이다.
가이다르 부총리의 복귀에 이어,보수파의 의회를 해산함으로써 옐친은 그동안 주춤했던 경제개혁을 다시 밀어붙이고,그럼으로써 서방측의 신뢰를 계속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제위기에 관해서는 서방측 안에서도 평가에 이론이 있다. 이번 옐친의 도박이 일거에 보수파를 밀어내고,헌법을 고쳐 안정된 개혁체제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적 절차」라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옐친의 초법적 조치를 즉각 지지했다. 이로써 옐친의 도박은 서방측의 묵시적 지지밑에 시도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의회는 대통령의 포고를 무시하고,옐친정부는 의회가 만든 법을 무시하는 정치의 공백상태가 이어져왔다. 옐친의 도박은 조기총선거와 조기 대통령선거를 내세우고 있다. 두 정치세력이 장군멍군을 멈추고 타협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러시아의 정치적 대결이 타협을 통해 안정과 성장의 궤도로 올라서기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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