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고르바초프·당원로 비판/90년 공산당과 결별… 인기상승/91년 군부 보수파 쿠데타 저지/93년 비상통치·신임투표 감행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또다시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감행했다. 91년 8월 쿠데타군의 탱크에 맨몸으로 올라가 군부보수파들의 반란을 저지했던 옐친이 이번에는 보수파의 아성인 의회를 전격 해산하는 모험을 저지른 것이다.
옐친의 도박은 85년 고르바초프에게 발탁돼 일약 모스크바시 당 제1서기가 되면서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옐친은 86년에 권력의 정점인 정치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2년후에는 개혁속도가 느리다고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당원로를 공격한 것이 화근이 되어 정치국에서 축출되고 만다. 그러나 여론의 지지와 개혁의 대세를 간파한 옐친은 공산당에 연연하지 않고도 89년 최고회의 대의원에 당선됐고 90년에는 아예 공산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옐친의 저돌적인 행동은 물론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공산당 탈당뒤 그의 인기는 더 높아졌고 91년에는 러시아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마침내 1인자가 됐다. 옐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소비예트 사회주의연방(구 소련)의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의 창설을 주도하면서 91년 12월 자신의 정치적 후견이었던 고르바초프를 권좌에서 밀어냈다.
옐친의 등장이 결국 소련의 해체와 개혁의 가속을 가져왔지만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의회의 압력에 밀려 총리를 교체하는 등 수모를 겪은 옐친은 올해들어 비상통치를 선언하는가 하면 4월 신임투표 성격을 띤 국민투표를 강행,정면돌파를 감행했다.
국민투표에서의 승리에도 불구,의회의 입김을 잠재우지 못한 옐친이 그의 특기인 국민에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내놓은 비장의 카드가 의회의 해산조치다. 의회해산이 법적으로 위헌임은 명백하지만 옐친은 이번에도 국민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고태성기자>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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