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로」에 물꼬… 새바람 기대/개혁 칭송 탈피 강도높은 비판/수뇌부 범계파 끌어안기 분석민자당에 과연 언로가 트일 것인가. 당주변에 돌고 있는 의문들이다. 21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당무위원 및 상임위원장 초청만찬을 계기로 이같은 물음표가 당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당수뇌부는 이런 질문 자체를 수긍하지 않고 있다. 언로가 막혀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정부 출범이후 민자당내에 의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쉽사리 개진하기 어려운 냉랭한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개혁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험한」 일로 여겨졌다.
21일의 청와대 만찬은 그동안의 당내 분위기에 비춰볼 때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우선 김영삼대통령 스스로가 의원들의 기탄없는 의견개진을 유도했고 많은 의원들이 나름대로 속에 품었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날 발언의 내용이다. 종래 청와대 공식행사에서 나왔던 얘기들은 한결같이 개혁을 칭송하는 내용 일변도였으나 이날의 발언들은 달랐다. 주로 경제에 관한 얘기였지만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이 포함됐다. 김 대통령으로선 듣기에 어려운 얘기들이 적지 않았다. 김 대통령 자신도 『오늘처럼 허심탄회한 얘기들은 과거에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것이 문민정부의 달라진 면』이라고 평가했다.
당내에는 이처럼 달라진 분위기를 일련의 당내 갈등 움직임과 연결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재산공개 파문으로 표출된 구 여권의 불만과 계파간 갈등 조짐을 무마하려는 당수뇌부의 의식적 노력이라는 분석이다.
재산공개 파문처리를 둘러싸고 민자당내에선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새어 나왔다.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 쪽은 물론 재산공개의 피해자인 민정계이다.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계파문제의 노골적으로 들먹이는 경우도 있었다.
민정계의 불만이 비단 재산공개에서만 비롯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련의 개혁정책,특히 사정한파와 정치권 개혁과정에서 차츰 기득권이 상실돼가는 반면 자신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당내 의사결정 구조에 근본적인 불만을 느껴왔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불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확대 재생산돼왔으며 동시에 분출구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 민정계 인사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 15일 당무회의에서 곽정출의원이 재산공개 파문수습과 관련해 지도부를 강도높게 성토한 사례 등은 이같은 당내 분위기의 일단이 표출된 것이다.
이처럼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모임을 자제해왔던 민정계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듯한 움직임마저 감지되자 당수뇌부로서는 이들을 무마할 필요를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계파갈등이 당장 여권의 역학구도 자체를 흔들어 놓을 정도는 아니라해도 계속 악화될 경우 자칫 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기국회에 진입해있는 현 상황에서 민자당이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김 대통령의 개혁프로그램 자체가 일그러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민자당 수뇌부는 정치개혁을 내세워가며 기득권 세력을 물갈이하기 보다는 당분간 모든 세력을 끌어안고 가려는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릴 것으로 전망된다. 21일의 언로개방도 이런 관점에서 당수뇌부의 적극적인 유화책 제시로 해석된다.
이날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김 대통령과 김종필대표가 직접 나서 참석자들의 말문을 열어준 것은 당내 화합을 모색하려는 적극적인 제스처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은 『이날 모임의 분위기로 보아 앞으로 당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민자당이 모처럼만에 정치력 복원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지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정치력 복원조짐이 지속적인 개혁추진과 어떤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이다. 김 대통령은 23일 또 한차례의 의원들과 청와대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