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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차 총회를 계기로 진단(유엔이 달라진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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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차 총회를 계기로 진단(유엔이 달라진다:3)

입력
199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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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위기/미 등 거액분담금 체납 “허덕”/PKO 파병에 8억불 빚더미/금고 비어 직원봉급마저 걱정/주말회의 폐지등 절약운동도 실효의문유엔총회가 열리는 요즘 유엔본부는 사무국 직원에게 봉급을 못주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것은 사실에 가까운 소문이다. 유엔금고가 9월 첫째주에 바닥나는 바람에 사무국 직원에게 봉급을 지급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달에 두번으로 나눠 지급하던 봉급을 한번에 몰아준다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고 한다.

유엔 예산은 사무국을 움직이는 일반예산과 평화유지활동(PKO)을 위한 PKO 예산으로 분리되어 운영된다. 그런데 유엔은 일반예산은 물론 PKO 예산도 제때에 조달하지 못해 빚방석위에 앉아있다. 유일한 수입원인 분담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PKO는 계속 늘어날 전망인데 치솟는 경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유엔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93년도 유엔 일반예산은 10억7천만달러이다. 그러나 7월말 현재 5억1천만달러가 체납됐다. 92년 이전 예산에서 회원국이 낼 분담금 체납액도 4억8천만달러나 된다. 유엔본부가 위치한 뉴욕시의 연간 경찰 및 소방예산이 23억달러이다. 세계 1백84개국이 모여 만든 유엔이 뉴욕시의 연간 경찰·소방예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예산조차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는 현상은 팽창하는 유엔이 갖고 있는 결정적 한계이다.

유엔 재정위기의 큰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넓은 의미로 보면 유엔이 독립적인 재원을 갖고 있지 못하고 회원국의 분담금에 의존하는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좁혀보면 미국이 자국의 정치적 이유로 거액의 분담금을 체납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유엔의 금고상태는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 미국이 92년도 분담금중 약 2억4천만달러,93년도 분담금중 2억7천만달러 등 총 5억1천달러 정도를 지금까지 내놓지 않는 바람에 유엔사무국이 봉급을 늦게 지불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유엔 일반예산은 회원국의 총생산,1인당 국민소득 등을 기준하여 매 2년마다 분담률을 산정하고 이에 따라 분담액을 당해 연도 1월말까지 유엔에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부강한 나라일지라도 분담률이 전체예산의 25%선을 넘지 못하며,아무리 가난해도 최소한 0.01%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미국이 25%로 가장 많고 일본 12.4% 독일 8.93% 러시아 6.71% 프랑스 6.0% 영국 5.02% 이탈리아 4.29% 캐나다 3.11% 스페인 1.98% 우크라이나 1.87% 등으로 10대 부국이 유엔예산의 75.4%를 분담하고 나머지 1백74개국이 24.6%를 내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 0.69%로 21번째이며 북한은 0.05%로 68번째이다. 최하분담률인 0.01%(올해 납부액 10만2천51달러)에 해당되는 나라가 무려 48개국에 이른다. 이같은 분담률 통계를 볼때 왜 일본과 독일의 발언권이 유엔에서 높은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분담액이 잘 걷히지 않는 이유로 대략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개별국가의 예산회계연도가 유엔과 일치하지 않아 생기는 기술적인 체납현상이다. 한국 일본 등이 이런 나라에 속하나 큰 문제는 아니다. 둘째 국가재정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내는 국가들이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국가나 아프리카 빈국들이 여기에 속한다. 러시아의 체납액은 8천만달러,우크라이나는 3천6백만달러로 이들 국가들의 미납액이 유엔재정을 압박하고 있고 계속 문제로 남을 전망이다. 셋째 미국같이 국내의 정치적 이유로 거액을 체불하는 국가가 있다.

유엔 정규예산의 25%를 맡은 미국이 이렇게 돈을 안내는 이유는 순전히 국내 정치 때문이다. 세계를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는데 익숙해온 많은 미국인들이 유엔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예산의 칼자루를 쥔 의회에 이런 정치인들이 많다. 의회가 유엔분담금에 필요한 예산을 승인해주지 않으니 체납국이 될 수 밖에 없다.

유엔은 일반예산보다 3배나 더 많은 PKO 예산이 있다. PKO 예산은 일반예산과 달리 안보리가 새로운 PKO를 설치하면 예산을 회원국에 분담시킨다. 일반예산의 분담금 기준에 준하되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훨씬 많이 부담하고 개도국의 분담률은 경감해준다. 유엔은 현재 PKO 파병국가에 지불해야 할 8억달러를 빚으로 짊어지고 있다. 파병국가가 경비를 조달하는 외상사업인 것이다. PKO 분담금 체납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재정위기를 맞은 유엔사무국은 돈이 많이 드는 주말 또는 심야회의를 없애고 유엔자료 배포부수를 제한하는 등 절약방법을 짜고 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체납국에 대한 이자부과 등 아이디어도 나왔으나 체납국이 미국이어서 이를 추진하지도 못하고 있다.

미국의 분담금 체납은 자체적인 정치문제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강대국의 오만한 횡포로 비쳐지고 있다. 미국이 지금 유엔을 통해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5%의 분담금을 체납하고 앉아있을 형편은 아니다.<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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