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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때 불만행항거 순국/두번죽은 애국혼/한말의 거유 사기이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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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때 불만행항거 순국/두번죽은 애국혼/한말의 거유 사기이시원

입력
1993.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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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묘소 간곳없이 훼손/밭으로 변해 역사 망각속으로/위당스승인 손자 이건승묘도외규장각 도서의 한국반환에 대한 프랑스 국내의 반발은 한국인들을 착잡하게 한다.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할 문화재를 자기들 것인양 지키려 하는 그들의 태도는 문화제 애호인가 몰염치인가.

그러나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우리는 약탈문화재와 약탈당할 무렵의 역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라의 힘이 약해 노략질을 당했으면서도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것과 역사보존에 너무나 무관심했다.

병인양요(1866) 당시 프랑스군의 만행에 항거,음독자결한 사기 이시원선생(1790∼1866)의 묘소가 밭으로 갈아엎어졌다가 흔적마저 없어진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있다. 한말의 대학자로 이조판서까지 지낸 사기는 병인년 10월 향리인 강화도가 프랑스군에게 유린당하자 고종에게 올리는 상소를 남기고 순국,영의정에 추증됐던 인물이다.

사기의 묘소는 일제치하 등 굴욕의 역사에 묻혀 버려져오다 강화학의 명맥을 이은 위당 정인보의 제자 민영규 연세대 명예교수(79)에 의해 70년대초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들판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고증자료를 통해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민 교수는 그뒤 90년초 무덤이 파헤쳐졌다는 말을 전해들었으나 차마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한채 혼자만 삭여오다 최근 프랑스의 약탈도서 반환을 계기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민 교수의 말을 듣고 20일 현장확인에 나선 위당의 3녀 정양완 정신문화연구원 교수(64·한문)와 문화재위원인 조흥윤 한양대교수(48·문화인류학),심경호 강원대교수(37·국문학) 등 23병은 사기의 묘는 물론 부근에 있던 사기의 손자이자 4촌 건방과 함께 위당의 스승이었던 이건승의 무덤이 훼손돼 없어진 모습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 교수는 『사기는 약탈과 부녀자 겁탈을 일삼는 침략자의 만행을 모른체하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던 관군을 대신해 임금과 백성들에게 죽음으로 사죄했던 선비』라며 『권력에 추종하지 않고 인간발견을 중시한 강화학의 대가이자 애국지사인 사기는 무덤마저 없어져 두번 죽은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 교수에 의하면 사기는 둘째아우 지원과 함께 독약을 마신뒤에도 담소를 나눌 정도로 의연했으며 유서를 통해 「귀신이 되어서라도 못된 무리들을 물리치겠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사기의 가문은 양명학을 정착시킨 하곡 정제두(1649∼1736)에 수사한 3대조 이광수(1705∼1777)이래 강화도에 거주하며 강화학파를 형성해온 명문이다. 사기는 특히 도학의 정통성에서는 이단으로 배척되는 양명학을 바탕으로 주자학의 허위의식을 지양,엄격한 가치판단과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학풍을 발전시켰다. 그의 글을 모은 사기문집은 벼슬에 대한 사퇴서로 가득찰 정도로 벼슬살이를 마다했으나 철종은 즉위후 강화도령 시절의 인연을 잊지않고 한사코 한양으로 불러 중용했다.

14세때 할아버지 사기의 자결을 목격한 한말 4대 문장가인 영재 이건창(1852∼1898)도 이듬해 장원급제해 암행어사 등으로 활약하며 관헌의 횡포를 막고 외세를 경계하는데 힘썼다. 「당의통략」의 저자로도 유명한 영재는 3번 유배를 당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불의에 굽히지 않았으며 아우 건승,4촌동생 건방과 함께 강화학을 계승했다.

그러나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 있는 영재의 묘소는 군사적지로 지정돼 있을뿐 비석 하나없이 쓸쓸히 방치된 상태이다.

조 교수는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프랑스가 약탈해간 귀중자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다행』이라며 『고문서 몇권을 돌려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민족이 처했던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반성이 아쉽다』고 말했다.<강화도=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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