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인 1991년 5월4일 스위스중부의 소도시 미이링겐에서는 별난 행사가 열렸다. 이곳의 라이엔바하 폭포앞에 수많은 구경꾼이 모였다. 폭포곁에서 두 사나아기 한참동안 격투를 하다가 함께 폭포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격투한 두사람은 명탐정 셜로크 홈즈와 그의 숙적 모리아티교수다. 낙하 장면은 실물대의 인형이 대역을 했다. 이것은 영국의 추리작가 코넌 도일의 소설 「최후의 사건」 장면을 작품에 나오는 현장에서 재현한 것이었다.「1891년 5월4일 셜로크 홈즈는 숙적과의 싸움에 이긴뒤 행방불명이 되어 생사불명이다」
코넌 도일은 이 추리소설에서 그가 창안한 명탐정의 최후를 이렇게 그렸다. 셜로크 홈즈의 퇴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독자의 성화가 빗발쳤다. 별수없이 명탐정은 다시 나타나 다음 작품에서 어려운 사건들을 척척 풀어나가게 된다.
마이링겐의 모임은 이 「최후의 사건」의 1백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인구 4천의 이 조그만 도시는 이날 교화앞 광장을 코넌 도일광장으로 명명했고 셜로크 홈즈를 유일한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셜로크 홈즈 기념관도 개관되었다. 이 기념관에는 코넌 도일의 작품에 그려진 런던의 베이커가 221B 번지의 셜로크 홈즈의 방을 재생시켜 놓았다. 소설의 허구를 현실 속으로 끌어 들이는 얘독자들의 극성이 고소롭다.
그런데 이날 행사를 주관한 것은 런던의 셜로크 홈즈협회였다. 회원들은 소설의 배경인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분위기를 살리기위해 런던의 고의상점에서 19세기의 옷들을 빌려입기까지 하고 왔다.
셜로크 홈즈 협회는 코넌 도일의 탐정소설에 심취한 「셜로키언」(셜로크 애호가)들의 모임이다. 1951년에 창립되어 회원이 현재 약 1천명에 이른다. 그중 3백명 가량은 미국,캐나다 등 외국 독자들이다. 연간 회비를 12.5파운드(약 1천5천원)씩 낸다. 이들은 두달에 한번씩 모여 코넌도일의 작품을 놓고 토론한다. 협회는 1년에 2회 회보를 발간하고 여러 기념 사업을 벌인다. 퇴역해군 장교인 스태버트씨가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1980년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의 1백주기때는 내가 그의 묘소를 찾아간 일이 있다. 이 「보바리부인」의 작자를 기려 고향인 루앙에서는 기일인 5월8일부터 3일간 각국의 플로베르 연구가 50여명이 참석한 국제세미나가 열렸고 기념전시회가 시내의 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세미나가 끝난 5월10일 참가자 일행이 루앙 공동묘지의 묘소를 참배하는데 나도 쫓아갔다. 이 추모제나 기념행사는 플로베르 애호가 협회가 주최하는 것이었다.
파리 교외의 마를리 르 르와에 있는 몬테크리스토 성관은 「몬테크리스토백작」의 작자 뒤마 페르가 지은 집이다. 그의 생전에 이미 팔아버린 건물을 1970년 이 마을 등 인근 3개 마을이 공동으로 사들여 기념관으로 만들면서 그 관리를 뒤마 애호가회에 맡겼다. 애호가회에서 매년 여름 이 성관의 뜰에서 뒤마의 작품을 연극으로 공연하는 뒤마제를 연다.
「폭풍의 언덕」의 작자 에밀리 브론티가 살던 집은 영국의 호워드에있다. 1928년 이 마을 출신의 한 독지가가 이 집을 매입하여 브론티 애호가회에 기증했다. 이 회가 건물을 기념관으로 관리중이다.
이런 것들은 부분적으로 예지만,유럽에서는 웬만한 문학인은 각각 다 애호가회가 구성되어 있다. 이 애호가회가 기념사업이나 행사를 주동하고 주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인 애호가 모임이라면 지용회가 맨처음이자 가장 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1988년 정지용시인이 해금되면서 발족한 지용회는 회원이 7백여명에 이르고 시인의 옛제자들이 낸 성금을 기금으로하여 그동안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시비와 흉상을 세우고 생가 등에 기념판을 붙이고 문학상을 만들고 해마다 빠짐없이 시인의 생일인 5월15일을 전후해서 지용제를 열어온다.
생존한 문학인을 위해서는 1991년 서정주시인의 「화사집」 50주년을 기념하여 미당시제가 열리면서 미당시회가 결성되었고 3백여명의 회원이 모였다.
아마 우리나라의 애호가회로서는 이것이 고작일 것이다. 한 문학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으로는 작년에 한용운을 위한 만해학회가 탄생하고 올해에 이태준을 위한 상허문학회가 새로 생겼다. 만해학회는 작년 6월 시인의 고향인 홍성에서 만해문학의 밤을 주최하기도 했다.
올해는 이상화,내년에는 이육사,내후년에는 윤동주시인의 50주기를 맞는다고 했지만 그 기념을 위해 누가 나설것인가가 걱정이다. 앞으로 다른 문학인들의 주기년은 또 누가 손꼽아줄것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앞장서면 관제라하고 유가족이 참견하면 사제라 하고 그러면서 모두들 자기 일은 아니라 한다.
우리의 대시인이나 대작자들이 외국의 한 작중인물 만큼도 기념되지 않는것은 분하다. 우리는 대개 누군가의 애독자다. 애송하는 시나 감명받은 소설 몇편씩은 가지고 있다. 그 감동을 열광으로 데워 저마다 그 문학인의 이름 아래로 모이자. 애호가 모임의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킬 때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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