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난 1962년 6월9일 밤.모처럼의 주말을 쉬던 국민들은 「한밤의 홍두깨」로 모두가 경악했다. 정부가 다음날 상오 10시를 기해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개혁의 골자는 화폐의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환화표시화폐는 당분간 병행사용되는 소액화폐외에는 무효화하되 금융기관에 강제예입,이를 원화와 10대 1의 비율로 교환해주며 장차 8일간의 생활비조로 1인당 5백원 한도로 새 돈을 교환해주고 그때까지 금융기관의 예금지불을 봉쇄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담화문에서 통화개혁은 축적된 음성자금과 과잉구매력을 산업자금화하고 악성인플레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주목적이 있다고 강조했으나 국민들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사실 통화개혁을 실시한 진짜 속셈은 야심적으로 벌여놓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재원을 조달하려는 것이었다. 군사정부는 이미 구악과 부정축재로 낙인찍은 구 정치인들과 재벌들이 부정하게 엄청난 돈을 모아 숨겨둔 것으로보고 이를 강제신고 예입시켜 장차 세워지는 산업개발공사의 자본금으로 하여 재원을 확보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실시한 통화개혁은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여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 전반을 뒤흔들었다. 물가는 날로 뛰고 매점매석이 판을 치고 대소기업은 자금부족으로 운휴며 사회불안까지 가중되었다. 잔뜩 기대했던 숨겨진 부정자금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신고된 구권중 10만환 이하가 전체의 94.7%로 밝혀진 것이다.
결국 정부는 통화개혁 33일만에 명목절하의 효과만 낸채 봉쇄예금의 완전 해제로 백기를 들었다.
2차대전이후 많은 나라들이 명목절하(Denomination)이건 평가절하(De Valuation)이건 숱하게 통화개혁을 실시했지만 1946년 2월27일 단행했던 서독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실패하여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
원래 통화개혁은 경제혁명이다. 때문에 긴시간의 다각적인 준비와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책 등이 마련돼야 하며 그렇게해도 경제의 주체인 국민의 심리와 호응여부로 성공률은 희박하다. 대체로 일부 정치적 후진국에서 독재로 인한 정국불안과 혼란,경제난맥때 극약요법으로 단행했지만 모조리 실패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 53년 2월 1차와 62년 2차 개혁 모두 실패한뒤에도 시국이 어지러웠던 유신 중반과 80년,그리고 이철희·장영자 부부사건이 났을 때 통화개혁설이 번져 국민들을 긴장케 한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잠잠하던 통화개혁설,화폐교환설 등이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심상치 않게 고개를 들고 있다. 새정부가 실명제의 부작용을 해소,정착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단행할지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정부가 단호하게 부인,일축하자 이어 5만원 10만원짜리 등의 고액권 발행설이 나오고 요즘엔 올 가을의 「경제대란설」 「경제개혁설」이 공공연하게 떠다니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청와대와 한은 당국자가 「무근」이라고 역설했지만 도저히 있어서는 안되는 얘기들이다. 이런 뜬소문들은 새정부 새통치권자의 스타일과 연관지어 멋대로 상상한 무책임한 한담에서 나오거나 또는 일부의 투기꾼 등이 의도적으로 흘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나 그렇다고 함부로 손을 대거나 극약요법을 써서는 결코 안된다. 경제야말로 고무풍선 다루듯 매우 조심스런 자세로 대응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물론 이같은 갖가지 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하지만 정부도 이같은 소문설이 명백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물고 있는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해소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실명제는 모두가 기다렸고 또 언젠가는 반드시 실시해야 할 조치이지만 기술적인 계몽이 없고 또 각종 대책마련이 허술한 가운데 전격 단행했기 때문에 많은 진통을 겪고 있는게 사실이다.
부질없는 통화개혁설이나 경제대란설 등을 일소하기 위해서도 경제에 대한 충격적 조치는 실명제가 마지막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는 물론 경제도 당연히 내일 등 앞날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때 헛소문도 없어지고 국민들도 경제안정에 흔쾌히 나서게 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