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O 팽창/탈냉전시대 “세계경찰”/76개국 8만명,12개지역 활동/효율적 지휘체계 마련등 과제변화하는 세계를 따라 유엔이 달라지고 있다. 소련의 붕괴로 탈냉전의 막이 오른지 2년동안 신국제질서의 중심무대가 유엔으로 옮겨지고 1백84개 유엔회원국들은 이 무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달라지는 유엔의 모습을 몇회로 나누어 살펴본다.<편집자주>편집자주>
유엔의 변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분야는 평화유지활동(PKO)이다. 뉴욕의 유엔본부 건물 2층에 있는 기자회견장에서는 유엔 대변인이 매일 정오 정례브리핑을 한다. 브리핑의 90% 이상은 PKO에 관한 것이다. 세계평화와 안전에 일차적 책임을 진 안전보장이사회는 거의 매일 회의를 연다. 안보리의 의제도 역시 PKO 문제가 압도적이다. 요즘 유엔은 마치 PKO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이제 겨우 유엔가입 2년째를 맞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뒤질세라 지난 여름 소말리아에 2백52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사실이 유엔무대에서 PKO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1년전 한국의 소말리아 파병을 예측했던 한국인이 몇명이었을까. 이렇게 유엔은 변하고 있고 따라서 회원국들도 예기치 못한 유엔활동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14일 유엔의 PKO 활동을 「성장산업(Growth Industry)」이라고 지칭했다. 실감나는 표현이다. PKO는 양적으로 팽창하고,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유엔은 올해 7월말 현재 12개 지역에 약 7만8천2백여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중이다. 91년말 1만여명의 평화유지군 수준에 비하면 7배 이상 늘어났다.
유엔의 통상활동을 위한 올해 정규예산은 연간 약 11억달러이다. 그런데 유엔이 앞으로 1년간 PKO에 투입할 돈은 그 3배가 넘는 42억달러로 예정되고 있다. 지난 46년간 PKO에 투입된 돈이 총 83억달러인 것에 비하면 기하급수적인 비용의 증가이다.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국가도 7월말 현재 76개국으로 전체 유엔회원국 1백84개국의 41%가 PKO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유엔 PKO의 팽창은 신국제질서의 일환이지만,그 구체적 계기는 92년초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과 안보리 정상회담이 결정적 촉매제가 되었다. 유엔 역사상 처음 열린 안보리 정상회담은 신임 갈리 총장으로 하여금 냉전이후의 국제평화와 안정을 위한 보고서를 마련토록 했으며,이에 따라 그가 작성한 「평화를 위한 과제」(Agenda for Peace)가 PKO 활성화의 동기가 된 것이다.
유엔은 지난 48년 최초로 팔레스타인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이후 46년간 65만명의 군인에 파란철모(유엔평화유지군의 상징)를 씌웠다. 그러나 과거의 전통적 PKO 활동은 경무장상태로 분쟁경계선을 갈라놓는 완충역할이 대부분이었다. 미소 냉전 탓이었다. 그러나 탈냉전이후의 PKO 활동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의 동의로 분쟁지역에 개입해 문자 그대로 「평화유지활동」을 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세계평화에 위협이 예상되는 문제지역에 일방적으로 개입하여 그 위협을 제거하는 예방외교와 평화조성역할로 탈바꿈하고 있다.
소말리아사태 개입이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군벌의 난무속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소말리아인 구호를 위해 유엔안보리의 승인아래 일방적으로 미군이 파병되어 식량수송로 확보작전을 펼친뒤 국가기능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캄보디아의 경우는 정파간의 합의에 의해 유엔 PKO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어 전통적인 평화유지군 파병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지난 5월 PKO가 총선거를 주관하고 국가기능을 회복시켜가는 과정은 유엔 PKO의 질적변화를 말해준다.
앞으로도 유엔 PKO는 「세계경찰」내지는 「소방수」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냉전체제 붕괴이후 봇물처럼 터지는 지역분쟁,인종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기구로 유엔 이외의 마땅한 대안은 없다.
2차 대전후 세계의 경찰역을 자임해온 미국은 타국 사령관 밑에 미군을 두어본 적이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독자군사작전인 「희망회복작전」을 끝낸후 일부 병력을 평화유지군에 배속시켜 터키인 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하는 등 유엔을 통한 세계질서 구축에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번창일로에 있는 PKO이지만 분쟁지역마다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다보니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평화유지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 언어와 관습과 가치관과 훈련체계가 다른 모자이크군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편성할 것인가. PKO의 활성화를 위해 유엔조직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PKO의 기본법이 되는 유엔헌장을 재검토할 것인가. 21일 개막되는 제48차 유엔총회는 이같은 문제를 놓고 진지하고 광범한 토의를 벌이게 된다.<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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