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 혼선·정치권 파장예고/개혁주의자… 해임땐 옐친 타격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루킨 미국주재 대사와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무장관이 심각한 불화를 빚고 있어 루킨 대사의 경질여부가 국제외교가의 큰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모스크바의 한 외교가에는 최근들어 루킨 대사가 경질되고 후임에 유리 보론초프 주유엔 대사가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소문의 배경은 루킨 대사가 최근 코지레프 장관의 현 외교정책을 공공연히 비판하고 나선데다 개인적으로도 해묵은 감정대립을 보여온데 있다.
루킨 대사는 최근 미·러시아간 최대 현안인 러시아의 대인도 미사일 판매문제를 놓고 러시아가 꿋꿋한 자세를 취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 8월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한 외교관을 세미나에서 러시아가 보다 독립적이며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코지레프 외교팀의 대외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코지레프 장관은 그러나 대인도 미사일 판매문제에서 미국에 양보할 것을 루킨 대사에게 지시하는 등 친미 외교노선을 바꾸지 않고 있다.
지난 90년 구 소련시대 막강한 최고회의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루킨은 코지레프를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후임으로 추천하는 등 두사람은 친밀한 관계였다.
그러나 두사람의 관계가 구 소련의 붕괴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코지레프는 옐친 행정부의 외교사령탑을 맡았고 전권을 행사키 위해 자신에게 부담이 되는 거물급 루킨을 주미 대사로 「영전」시켰다.
이후 두사람은 불협화음을 빚어왔다. 지난 3월 옐친 대통령이 보수파의 대공세로 위기에 몰리자 코지레프는 루킨에게 서로 직위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했다가 루킨에게 거절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근에는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미국순방에 앞서 당연히 협의차 모스크바에 와야했던 루킨을 못오게 한 것도 코지레프임이 밝혀졌다.
코지레프는 또 대미 정책을 루킨 대사보다는 자신과 가까운 안드레이 코로소프스키 공사와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옐친 대통령이 코지레프 장관과 루킨 대사 가운데 누구를 편들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루킨도 옐친의 개혁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얻는 대미창구인 대미 대사에 임명될 만큼 옐친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인물이다.
러시아 외교소식통들은 만약 루킨이 해임된다면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비중으로 볼때 옐친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계 일각에서는 루킨이 옐친 대통령의 미움을 사 밀려난 유리 스코코프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서기가 결성한 신당이나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그리고리야블린스키 전 부총리의 정파 등 중도연합세력에 합류,옐친 진영의 견제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루킨은 과거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선거때 루슬란 하스불라토프 현 의장이 당선되면 매우 위험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정치적인 안목도 평가받고 있다. 그는 개혁정책을 지지하면서도 독립적 활동을 해와 러시아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루킨과 코지레프의 대립을 러시아 역사의 큰 흐름이었던 슬라브주의자와 서방주의자의 대립양상으로 확대해석하기도 했다.
그동안 러시아 국내에서 대외정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온 만큼 양자의 갈등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 주목된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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