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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인들 미래불안감 여전/평화협정은 조인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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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인들 미래불안감 여전/평화협정은 조인됐지만…

입력
199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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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파트행위는 협상아닌 밀실거래”/5년뒤 독립국가건설에 의구심타리크 바크리의 얼굴엔 웃음이 없다. 세상물정에 눈을 뜨면서부터 늘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예루살렘엔 한창 예민한 23살의 팔레스타인 청년이 즐거워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 설움과 좌절감만을 무겁게 이고 나라없는 백성의 천형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평화가 찾아온다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타리크는 예루살렘 토박이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조상대대로 거기서 살아왔다. 71년에 태어난 그는 위압적인 이스라엘 군인들을 보며 자라왔다. 10분쯤만 걸어가면 유태인이 사는 서예루살렘이지만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갈일도 없거니와 눈총받는 낯선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고향을 등진것은 지난 88년.

이스라엘의 점령지역안에는 8개의 대학이 있지만 당시 격렬한 대이스라엘 저항운동으로 거의 문을 닫을 지경이어서 이집트로 유학한 것이다. 그의 친구들도 이집트,요르단,시리아 등 이웃 아랍국가의 대학을 찾아떠났다.

카이로에서의 대학생활도 갈등의 연속이었다. 「팔」인의 설움을 새삼 깨우치게 하는 기간이었다. 같은 아랍인이면서도 이집트인들은 타리크를 눈에 보이게 안보이게 차별했다. 그는 요르단에서 여행허가증을 받았지만 다른 아랍인들과 달리 이집트에서 까다로운 비자를 재발급 받아야 했다.

카이로의 아메리칸 유니버시티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타리크는 92년 대학을 마친뒤 곧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랍권이니 다른 외국에서 일자리를 구할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필요로하는 곳은 고향뿐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또 좋은 직업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루살림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가족과 친구,그리고 절망뿐이었다. 최신경영이론을 습득하고 영어에도 능통했지만 고향에선 써먹을 곳이 없었다.

한해동안 고등실업자가 되어야했던 타리크는 한달전 스낵가게를 열었다. 재력이 조금있는 아버지 덕분에 동예루살렘 중심가 살라헤딘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늘 깨끗한 그의 가게에선 햄버그와 핫도그 음료수를 판다. 문을 연지 얼마안되지만 밤 11시까지 그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빠쁘다.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과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백악관에서 악수를 나누던날 타리크는 가게문을 닫았다.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과 하마스 등 과격단체가 주도한 항의파업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그가 하마스 등 과격단체의 지지자는 아니다. 지금까지 줄곧 PLO와 아라파트를 지지해왔다. 2년전 마드리드에서 시작한 평화협상도 지지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독립을 찾는길의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라파트가 한 행동은 협상이 아니라 「밀실거래」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그의 말대로 5년뒤 독립국가가 세워진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꼭두각시일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이다.

그래서 티리크는 더이상 아라파트를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혼란을 느끼고 있다. 아라파트를 대신해 믿고 따를만한 지도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직접 해외로 나가 총을 들고 싸울 생각도 없다. 스스로 투사가 아니란 걸 잘 알기때문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고 장사가 잘돼 돈도 제법 벌게 되더라도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확실한건 하나있다.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한 결정은 잘한 것이란 믿음이다. 남의 땅 어디에 살더라도 팔레스타인 청년에게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와 조상들이 그러했듯이.<예루살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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