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친구도 없지만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13일 목격했다. 이날 워싱턴에서 거행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평화협정 서명의식은 전세계 약 1백개국에 생중계된 역사적 사건이다.이 협정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시에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고 요르단강 서안에는 5년동안 제한된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제 피로 피를 씻는 이스라엘과 PLO의 전쟁과 보복공격은 이날로 끝났다.
이것은 냉전종식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재편노력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요르단 일대를 폐허로 만든 유혈의 땅에 평화가 공식선언됐다는 사실을 당연히 환영한다.
그러나 30년동안 이어진 전쟁과 유혈의 보복이 끝났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안정적인 평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PLO를 포함하는 이 지역의 아랍 4개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협정은 크게 봐서 67년 11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제242호 결의의 원칙에 기초를 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땅과 생존권을 교환」하는 원칙이다.
그러나 67년 중동전쟁 이후 사태발전의 방향은 이러한 원칙의 단순논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인 정작촌이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역에 10만,정착인구가 없는 미개발지였던 골란고원에 1만2천명을 입식케 했다.
이번에 양쪽이 도장을 찍은 「제한된 팔레스타인 자치」는 5년의 과도기에 궁극적인 팔레스타인 독립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이번 협정만으로 낙관할 수 없는 「지뢰밭」이 가로막고 있다.
3백만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1백만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전략적 요충을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민의 장래 등이 논쟁의 불씨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의 유혈대결은 「땅과 생존권의 교환」이라는 도식으로 청산될 수 있는 세속적 대결이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 종교적 「성전」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아라파트가 동의한 「평화」가 팔레스타인에 상당한 평화의 과실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회교근본주의의 성전운동은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아마도 93년의 평화협정은 동시에 이 지역 아랍 4개국에 새로운 회교근본주의운동의 출발을 뜻할 수도 있다.
일단 두 적대자가 손을 맞잡고 화평에 동의한 것은 평화를 위한 돌파구가 마련됐음을 뜻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돌파구일 따름이다. 만만치 않은 평화협정 반대의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도 서방측의 적극적인 경제지원 노력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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