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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지도층」들/이문희 편집담당 상무(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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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지도층」들/이문희 편집담당 상무(화요칼럼)

입력
1993.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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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 신문을 도배하듯 쏟아진 재산공개 기사 가운데 눈에 띄었던 하나는 30년 공직을 봉사하면 얼마만큼의 재산을 모을 수 있을까하는 기사였다.(본보 9일자 조간 2면). 한국은행 등이 동원된 이 추계는 매달 봉급을 우리나라 평균저축률인 30%씩 저축한다고 할때 집을 포함해 대략 5억원에서 10억원이라고 밝히고 있다.이것은 언뜻봐도 단순추계의 티가 역력한데 그래도 상한치인 10억원을 넘을 경우 부모의 상속이나 부업이 없는 한 「축재의 정당성을 주장할 근거가 희박하다」고 이 기사는 엄숙히 결론짓고 있다.

이런 기사도 있었다. 이버 재산공개 공직자 1천1백67명의 평균 재산액은 14억1천4백55만원. 이것은 월수 1백50만원의 봉급자가 한푼도 쓰지않고 모은다해도 78년 6개월이 걸리는 액수. 그러나 공개 공지가들의 평균 근무연수는 26년8개월이었다는 기사였다.

재산공개를 보면서 한가지 난감했던 일은 이 천차만별의 재산들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김영삼대통령 스스로도 말했듯이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매도」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럴만한 이유없이 10억대를 넘는 재산을 고운 눈으로만 볼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권위주의와 뇌물

하지만 재산규모의 적절여부는 성실한 신고인지를 가리는 실사와 재산형성과정의 정당성을 가리는 조사를 한다니 일단 거기에 맡겨보기로 하자. 다만 공개된 내역들에 투영된 「우리지도층」의 모습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김 대통령은 92년 대선전에 뛰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병폐를 한국병으로 통칭한 적이 있었다. 기강해이,무질서,불신,과소비,지역갈등 등… 그리고 무엇보다 으뜸으로 꼽은 것은 부정부패였다.

이것은 30년 귄위주의 밑에서 가장 맹렬하게 「양성」되어온 우리사회의 병인이었고 이번 공개재산의 내역들은 그 얼굴이기도 하다.

높게는 대통령에서부터 구청,동회의 창구에 이르가까지 돈봉투가 오가는 것이 생활처럼 돼있던 시절,그래서 뇌물 없이는 사회의 어느 구석도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시절,더구나 이것이 권력층이나 높은 직위에만 따라다닌 것이 이나라 사회이 마디마디,밑바닥까지 유행병처럼 번졌던 일을 우리는 결코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부정한 돈,힘 안들인 돈이 호화·사치·투기에 흐른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소위 「지도층」의 이런 생활방식은 커다란 모방심리를 확산시켜 분수에 맞지도 않는 층까지 이른바 과소비병을 일으켰다. 여기에 참여하려니 말도 안되는 부정사건이 여기저기 터져나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근로의욕,근면이 고양될리 만무하다.

옆에서 몇배다,몇십배다 하고 투기재미를 본다는 말에 여력이 있는 사람,없는 사람,해도 될 사람,해선 안될 사람까지 총동원돼 뜨끈뜨끈한 투기판을 벌이게 된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공개재산의 내역마다 나오는 용인군이다 제주도다하는 것들이 그때의 정경을 파노라마처럼 재현시켜주고 있다.

○도덕적 책임져야

이번에 공개된 재산내역,그 대상자들을 한마디로 뭉뚱그려 설명할 말이란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적지않게 그 열병의 주역급들을 보게되는 것은 우리 공직사회에는 불행이다.

「부정부패를 추방하자」,「과소비를 말자」는 숱한 구호,캠페인이 있었지만 그것이 늘 구호로 끝나고 말았던 이유가 공개내역에는 줄줄이 나와있다. 상층부,소위 지도층의 실천이 없는 하향식 지시란 겉돌게 마련이고 높은 사람,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고 행동하는가를 아는데 「우리만이라도 잘해야지」하고 나서는 하부구조란 독재사회가 아닌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재산공개의 뒷마무리는 이런 맥락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사와 조사가 엄정하되 비보복적으로 이뤄져야 하겠고 그 도덕적 책임은 적절히 물어야 할 것이다.

「과거사인데…」하는 것이 수궁이 가지않는 것도 아니고 「우리 다같이 그런 방식으로 살았고 남보다 조금 앞선것 뿐인데…」하는 말이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스(고귀한 신분의 의무)란 말의 존재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 이들이 새 시대의 지도부로서의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서도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다만 책임추궁의 선을 어디다 긋느냐하는 것은 개혁과 도약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할 정부의 몫이다.

지금 개혁의 가장 큰 견제어는 미래와 국제화이다. 언제까지 과거들추기에만 몰두하고,집안에서 끼리끼리 치고받는 일에만 매달려 있을 것인가이다. 금융실명제,공직자 재산공개라는 청정사회를 향한 이 보물같은 제도를 제도 착근에 주안을 두지않고 분풀이식 과거조사에 써먹다니하는 아쉬움도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이것은 공감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개혁반년의 콘센서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를 뛰어넘는 미래란 없는 것. 이 둘을 상충시키지않고 조화시키는 것은 개혁팀의 능력이요 기술이다.

지금 국면전환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요,손에 만져지는 변화의 결과가 고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거처리의 타이밍은 분명해진다. 신속한 매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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