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노력 불구 국민불신 계속/문민시대 걸맞는 물갈이 예고박종철 검찰총장이 13일 전격사퇴한 것은 검찰개혁의 물꼬를 트기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검찰내부에서는 새 정부출범후 계속된 사정활동과 슬롯머신 사건 수사 등을 거치면서 TK출신 총장으로서 그의 입지문제가 종종 거론되긴 했지만 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른 파문이 거세게 일고 있는 시점에서 박 총장이 사표를 제출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검찰은 1차 재산공개에서 검사장 2명이 사퇴하는 등 큰 홍역을 치른데다 이번 공개에서도 별다른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았던만큼 2차 재산공개 파동을 무사히 비켜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특히 박 총장은 1차 재산공개때 투기의혹을 받긴 했지만 일단 검증을 걸친 상태이고 이번 공개때도 재산현황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에서 재산공개와 관련해 특별히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그가 왜 재산공개에 따른 파문이 극에 달한 이 시점을 택해 사표를 냈는지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검의 부장들이 이날 하오 1시 박 총장이 마지막으로 소집한 긴급간부회의에서 사표제출 사실을 전해듣기 직전까지도 그의 퇴진가능성을 일축했던 점은 사표제출의 의외성과 전격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사퇴를 문민정부의 개혁구도 및 검찰내부의 개혁필요성과 연결하는 관측이 상당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박희태 법무부장관의 퇴진에 따른 검찰 수뇌부 개편으로 총장에 오른이래 재임 6개월은 검찰로서는 최대의 변혁과 위기의 시간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사정활동을 강화해야 했고 대내적으로는 사정기관 사정의 국민적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특히 1차 재산공개 파동과 슬롯머신 수사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검찰불신의 골이 깊을대로 깊어짐에 따라 검찰내부 개혁과 과감한 체질개선의 필요성은 더욱 요구돼왔다.
그러나 검찰은 고검장 3명이 사표를 내야했던 슬롯머신사건 이후 내부균열의 조짐이 나타났었고 인사를 통한 과감한 자기개혁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함으로써 문민정부의 사정기관 사정요구와 국민의 체질개선 요구를 충분히 수용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 총장도 퇴임사에서 『검찰이 그동안 벌여온 사정활동과 자기쇄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검찰개혁 문제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왔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따라서 박 총장은 검찰의 정기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수뇌부 개편없이는 검찰조직에 대한 불신을 치유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총수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검찰 물갈이의 계기를 마련하려 했으리라는 관측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헌법상 임기가 보장된 사법부 수장마저 물러난 마당에 본인 스스로 여러번 밝혀왔듯이 「가시방석같은」 자리에 더 이상 머무를 경우 자리에 연연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총장의 사퇴를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찾으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즉 그가 문민정부하에서 총장에 오르긴 했으나 대구 경북출신으로 현 정권하에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던 점이 사퇴의 한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박 총장이 새 정부 출범후 사정의 사령탑으로서의 중책에 충실해왔다고 볼 수 있지만 사정의 주된 대상이 소위 대구 경북 출신들에게 모아지자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검찰의 사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총장에게 쏟아지는 내부의 시선에 심적갈등을 느껴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총장도 퇴임식 직후 가진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오래전부터 사퇴를 결심해왔다』고 밝혀 심경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박 총장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개인적 부담감에 따른 심적고민의 돌파구로 사표를 제출하게 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검찰은 박 총장의 퇴임으로 문민시대에 걸맞는 위상을 정립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됐다.<김승일기자>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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