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승인」 찬반집회 “열기”/팔 주민 80% 아라파트 결정 지지/강경파선 “항복선언” 성토분위기지난 9일 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에서 예루살렘까지 기자를 태워다준 유태인 택시기사는 어떤 호텔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무심코 생각하고 있던 요금 수준을 제시하자 『그게 아니라 유태계 호텔과 팔레스타인계 호텔중 어느 쪽이냐』고 되물었다. 이곳의 1차적 판단기준은 돈이 아니라 유태계와 팔레스타인계중 어느 쪽이냐는 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예루살렘은 실제로 사람들의 의식을 유태와 팔레스타인으로 갈라놓을 만큼 전혀 다른 두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걸어서 불과 5분거리에 있는 두개의 예루살렘은 전혀 딴 나라같다.
이스라엘인이 살고 있는 서쪽지역은 마치 유럽의 한 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말끔한 현대식 건물에 깨끗한 거리,자유분방한 옷차림 등 서구적인 분위기가 넘쳐 흐른다.
동쪽은 전혀 달랐다. 허름한 건물과 거리에 가득찬 행인들의 행색부터가 남루하다. 인도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유태인은 슈퍼마켓을 이용하고 팔레스타인은 노점에서 장을 본다』고 설명했다. 『저들은 애들만 잔뜩 낳고 공부는 안시킨다』고 비웃듯 덧붙였다.
목표로 정한 호텔로 가던 도중 기사가 갑자기 어떤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한 팔레스타인인과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이 호텔은 어떠냐고 물었다. 내부를 둘러보니 허름하기는 해도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호텔에선 무엇보다도 조나단이라는 팔레스타인 청년이 아주 싹싹했다. 요르단대학에서 호텔 경영학을 공부했다고한다. 이 지역에서 취재를 하려면 저런 사람이 필요하겠다 싶어 그곳을 숙소로 정했다.
갑자기 호텔 주변이 시끄러워 내려가보니 10여대의 차량에 올라탄 팔레스타인인들이 깃발을 흔들며 경적소리 휘파람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지나갔다. 아라파트의 이스라엘 승인 결정을 지지하는 모임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의 행렬이 지나가자 또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가지를 서너차례 돌면서 군중수는 점점 불어났다. 하오 5시께 구 시가지 노천광장 앞에는 1천여명의 군중이 몰렸다. 요란한 북소리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무동을 타고 연설을 시작했다. 일부 군중들이 박수와 휘파람소리로 호응했다. 주위에 둘러선 군중들도 가벼운 흥분에 감싸였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는듯 했다. 하지만 그렇게 열광적이지는 않았다. 군중들 주변에 드문드문 둘러선 이스라엘 군인들에게서도 긴장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예루살렘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 이끄는 「파타」그룹의 본거지라 할만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아라파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인텔리풍의 호텔 주인은 팔레스타인인중 50∼60%가 아라파트의 결정을 지지하고 25% 가량은 급진적인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진단했다. 택시기사는 80대 20 정도로 분석했다. 어느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아라파트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은 것 같았다. 개인의견을 물으면 「아라파트의 결정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우선 한 2년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단서도 달았다.
그러나 아라파트 지지 집회가 열린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아라파트를 성토하는 모임도 있었다. 군중수는 1백여명에 불과했지만 열기는 있었다. 특히 숙소 바로 옆 건물벽에는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에 항복했다」는 낙서가 갈겨져 있었다. 목소리는 작지만 그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란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밤이 늦도록 아라파트를 지지하는 차량시위는 간헐적으로 계속됐다. 그러나 동예루살렘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쌓인 팔레스타인인들의 한과 설움을 풀기엔 평화합의의 내용이 너무 미흡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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