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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볼모삼는 구태(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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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볼모삼는 구태(사설)

입력
1993.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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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했던 정기국회가 문을 열기가 무섭게 교착에 빠지고 있다. 문민시대의 첫 정기국회에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에게는 실망이 크다. 국회운영이 이번에도 여야간의 정쟁의 제물이 되어 처음부터 난항에 부닺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시대에서는 여야간의 극한 대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빚어졌던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민정치시대에 와서 여야가 격돌할만한 큰 쟁점도 없는데 과거와 같은 파행현상이 되풀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과거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아무 생각도 비판도 없이 그냥 국회를 볼모로 잡는 전례를 답습하는 것이 마치 정치인양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이번 국회를 처음부터 교착으로 몰고간 사태만 해도 납득이 안간다. 정기국회 출발까지 가로막을만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이 내세운 요구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증언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들이 국회의 정상운영과 맞바꿀만한 것인가.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회를 거부할 수 있는가. 또 그 요구를 내세우며 국회를 거부한다고 할 때 무슨 이득을 볼 것인가. 명분이나 실리 어느면에서 보더라도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 증언과 정기국회를 연계시킨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이상하다. 전 대통령의 증언은 증언이고 정기국회는 정기국회이다. 두가지는 양립 병행시킬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평화의 댐이나 율곡사업에 대한 전 대통령의 증언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선 순위로 보아 정기국회를 정상운영해서 산적한 중요현안들을 순조롭게 처리하는 것이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정기국회는 각종 개혁입법을 비롯해서 다뤄야할 안건이 너무나 많다. 때문에 정상운영으로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렇게 출발부터 삐걱거려서는 안된다.

전직 대통령의 증언문제는 국회를 진행시키면서 풀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국회를 개점휴업상태로 끌고 간다는 것은 야당으로서도 소탐대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를 캐는 일에 국민들도 싫증을 느끼고 있다. 과거청산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미래지향적인 개혁청사진을 제시하고 추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동안 한국에 뒤떨어져 있던 나라들조차 벌써 잠에서 깨어나 도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나날이 변화하는 국제환경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여야는 국회에서 이런 논의에 경쟁적으로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일의 선후와 경중을 가려서 처리할줄 아는 분별력이 아쉽다. 어지러운 전환기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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