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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공작선(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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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공작선(장명수칼럼)

입력
1993.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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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8월8일 부산항을 떠난 중앙정보부 소속 선박 용금호는 오사카로 가서 외항에 정박하고 있었다. 밤 10시쯤 두눈을 흰 붕대로 칭칭 감고,양손을 뒤로 묶인 한 남자가 작은 보트에 실려 잡혀왔다. 보트로 사닥다리를 내렸으나 그 남자는 사닥다리를 타고 배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로프를 내려 그의 몸을 묶어서 끌어 올렸다.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잡혀온 남자가 두눈을 붕태로 칭칭 감고 있는데도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여 팽팽하게 겨뤘던 야당 정치인이었다. 그를 배밑에 있는 라다실(닻창고)에 가두고 교대로 감시하면서 한 선원은 『지난 선거때 나도 선생님을 찍었습니다』라고 귓속말을 하기도 했다. 한밤중에 배가 갑자기 멈추자 선원들은 『그를 바다에 던져버리려는 모양이구나』라고 짐작했다.

그때 하늘에서 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용금호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배는 부산항 외곽에 정박했고,선원들은 이틀후 배에서 내렸다. 그들은 입을 다물라는 협박과 함께 돈을 받았다. 배는 남항조선소로 들어가 용금호란 글자를 지우고 유성호라는 다른 배가 됐다….

당시 용금호의 조리장이던 조시환씨(65)가 20년만에 밝힌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양심선언」은 한편의 추리소설처럼 긴박감이 넘친다. 그의 증언은 우리가 짐작했던대로 그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공작이었음을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목격하고 직접 간접으로 관련됐던 사람들중에서 자신이 아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최초의 증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김대중씨 자신의 증언을 통해서 이미 알려졌던 내용들을 부분적으로 보완하고 있을뿐,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증언을 신문에서 읽으며 생생한 아픔과 비애를 느낀다. 그것은 그의 증언이 고통스럽던 시대의 한 희생양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갈등과 연민을 생생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보부 소속 선박에서 일하고 있는 선원들이 자기 자신이 한표를 찍었던 대통령후보가 가축처럼 묶여 납치돼오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창고에 갇혀있는 그에게 음식과 소변통을 날라다주며 『지난 선거에서 당신을 찍었습니다』라고 은밀하게 고백하는 장면,배가 갑자기 멈추자 무슨 일이 나는구나라고 긴장하는 장면,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에 그가 이제 살게 되는구나라고 안도하는 장면,협박과 회유로 입을 다물고 뿔뿔이 흩어지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우리 마음속을 흘러간다. 그의 고백은 김대중씨 자신의 증언보다 더 비극적이다. 그의 고백은 그 사건이 한 개인의 수난이 아니고,그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 모두의 수난이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민주당은 제발 「그레그 증언소동」처럼 어이없는 바보짓을 하지 말고,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끌어내야 한다. 더 이상 이 사건을 묻어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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