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10월 대란설등 곳곳 “지뢰밭”/실세금리 꾸준한 상승·증시 의외로 안정/조단 중기속출·고물가속 경기침체 조짐「이륙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향후 운항에 대한 낙관은 금물이다」
금융실명제 실시 한달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다. 증시폭락 및 사채거래 마비로 인한 금융시장 혼란,중소기업 연쇄 부도사태,부동산투기 심화 등 실명제 실시 초기에 나타나리라고 우려됐던 충격과 부작용이 당초 예상보다 아주 적었다는 점에서 금융실명제 실시는 출발단계에서 일단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점에서 낙관은 금물이다. 당장 추석자금 성수기가 문제다. 또 10월이 되면 거액현금 인출자의 국세청 통보조치가 해제된다. 다음에는 연말의 자금성수기가 기다리고 있다. 한마디로 산너머 산이다. 이 과정에서 만에 하나 대형금융사고나 기업연쇄부도 등과 같은 돌발현상이 터질 경우 실명제의 향방은 어느 누구도 점칠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도 실명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재무부는 10일 『금융실명제가 빠른 속도로 정착되어 나가고 있고 국민들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실명제 시행 한달에 대한 자체평가를 발표했다. 반면 대한상의는 지방상의를 통한 경제여론조사 결과를 발표,기업의 자금압박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등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이고 주류 과즙음료 등 무자료거래가 일반적이었던 상품의 도매가격이 20% 가까이 오르는 등 물가상승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충주상의의 경우 사채시장의 담보대출 이자율이 월 7∼8%로 3% 포인트 올랐다고 보고했다. 이는 연 1백%(복리)가 넘는 수준으로 가히 「살인적인 고금리」라 할 수 있다.
실명제 실시후 금융자산의 실명확인 및 실명전환 작업은 착실히 진척되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 단자 투신 신용금고 등 6개 금융권의 실명확인 비율이 지난 8일 현재 계좌기준 35.6%,금액기준 49.3%(증권제외)에 이르고 있다. 가명예금의 실명전환 비율은 계좌기준 19.3%,금액기준 35.9%(증권제외)다.
실명제 시행 한달동안의 각 부문별 동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금시장=은행 단자 보험 증권 등 금융시장이 실명제 전격실시의 충격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있는 가운데 실세금리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장실세금리인 회사채 유통수익률(3년짜리)의 경우 실명제 직전인 8월12일 13.55%였으나 지난 9일에는 14.53%로 한달 사이에 0.98% 포인트 올랐다. 부도율은 크게 둔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서울지역 부도율은 8월1∼12일중 0.05%에서 8월13∼31일에는 0.08%로 크게 높아졌으나 9월1∼8일에는 0.08%로 8월 하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일평균 부도업체수(서울)는 9월들어 14.3개로 8월 상순(11.9개)이나 8월 하순(13.8개) 보다 많아지긴 했으나 당초 우려했던 수준은 아니다. 현금통화(현찰) 공급량도 실명제 초기에는 급증세를 보이다가 9월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8월13∼31일의 현찰증가액은 1조2천9백90억원에 달했으나 9월1∼6일에는 1천35억원 줄었다.
◇주식시장=실명제 실시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됐던 부문이 바로 주식시장이었으나 전문가들의 진단을 우롱이라도 하듯 외관상으로는 의외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은 주식시장을 일시 폐쇄하는 방안까지 신중히 검토했고 최악의 경우 주가지수가 5백선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정도였다. 증시는 실명제 실시직후 폭락세를 보여 종합주가지수가 지난 4일 6백65.66까지 내려갔으나 그후 상승세로 반전,9일에는 6백96.14를 기록했다. 실명제 한달동안(8월12일∼9월9일) 29.8포인트 빠지는데 그친 것이다. 그러나 증시의 불안요인은 아직도 상존해 있다. 지금의 안정세는 자금출처 조사 등 정부의 인위적인 안정장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과거 주가를 움직이던 큰손들이 현재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당국은 『움직이면 쏘겠다』는 태세여서 큰손들이 그냥 엎드려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주식시장 안정은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자금출처조사 거액현금 인출자 명단통보 등의 큰손 규제장치가 해제되거나 완화됐을 때 큰손들이 어떤 행태를 보이느냐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을 건너는 기분』이라고 실명제 시행의 고충을 털어놨다. 10월 금융대란설 화폐개혁설 등의 루머도 중요한 불안요인이다.
◇사채시장=은행 단자 등 금융기관을 거쳐 거래되었던 사채자금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어음박치기」 등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는 새로운 수법의 사채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사채의 수요는 여전히 많은데 비해 사채공급은 줄어들었고 사채거래의 위험부담이 커지면서 사채금리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 서울지역의 A급어음 할인금리가 현재 월 1.5∼1.6%로 실명제 실시전보다 약 0.3∼0.4% 포인트 높아졌다.
◇실물부문=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고 있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조업시간을 단축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설비투자의욕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당초에는 6%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4∼5%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물가는 뛰고 있다. 일부 지역의 경우 고량주 도매가격이 한상자(3백60㎖ 20병)당 3만9천원으로 종전에 비해 7천원(21.9%) 올랐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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