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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자금·자재·심리 “3난”/실명제 한달맞는 업계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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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자금·자재·심리 “3난”/실명제 한달맞는 업계 표정

입력
1993.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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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마저 “하늘 별따기”/현금요구 납품업자들 거래 기피 예사/“기업 어떻게 꾸려가나” 투자의욕 잃어실명제 실시 한달째를 맞는 중소기업,특히 종업원 20인 이하 영세기업들은 새로운 금융 및 거래관행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고통스런 「통과의식」을 겪고 있다. 지난해 사상 유례없는 부도사태 속에서도 근근이 연명해온 영세기업들이 또다시 맞부닥친 험난한 파도는 자금난,자재난,심리적 불안감으로 요약된다.

10일까지 중소기업은행과 국민은행 창구를 통해 1만5백71개 업체에 3천2백26억원의 긴급 경영안정자금이 지원됐다. 그러나 제조업체만 7만개를 넘는 엄청난 수의 영세기업들에게 모두 혜택이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고 대부분의 영세기업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력갱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지역 공단 가운데 대표적인 영세기업 밀집지역인 경기도 고양공단에 있는 종업원 6명 규모의 창호제조업체 사장 채모씨(52)는 『거래처마다 어렵다고들 결제를 미뤄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대금으로 받은 8백만원짜리 어음을 할인하기 위해 일주일째 수소문중이다』고 말했다. 채씨는 실명제 실시이후 친척들에게 사정하다시피해 긁어모은 돈으로 겨우 겨우 자재대금을 치르고 직원들 8월 봉급은 줬지만 추석보너스는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채시장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지만 실명제 직전 2푼5리 수준이던 사채금리는 한달동안 4푼까지 뛰어올랐다. 부평에서 컴퓨터 조립업을 하는 한모씨(여·42)는 지난달 28일 결제일이 12월12일인 5백만원짜리 어음을 납품대금으로 받아 이를 사채업자에게 할인하려 했다가 기가 막혀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어음받을 때 할인기간이자도 못받았는데 여기에 4푼 사채이자를 떼면 뭐가 남느냐』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한씨는 신용금고에서 진성어음을 할인해준다는 정부 발표를 듣고 인천지역 신용금고들에 하루종일 전화를 돌렸으나 『그것은 정부이야기』라는 소리만 들었다.

돈이 부족하다 보니 영세기업들이 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다시 발행자에게 가져가 할인을 부탁하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부엌가구 부품제조업체 H산업 김모전무는 『볼트 납품업자에게 3개월짜리 어음을 끊어주었는데 지난 3일 어음을 다시 가져와 3푼이자를 떼고서라도 할인해 달라고 사정하는 바람에 난처해 혼났다』며 『우리도 현금이 없어 개인재산인 녹지대 땅 6백90평이라도 팔아보려 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처럼 「발행자 할인」을 요구하는 외에 납품대금에서 아예 3푼을 떼고 현금으로 달라고 하는,사실상 납품대금을 스스로 깎는 일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이다.

자금난과 맞물려 영세기업들을 목죄는 것은 자재난. 거래업체 부도를 우려한 원자재 납품업자들이 거래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이프용 접착제원료를 미국에서 수입해다가 소규모 제조업체 1백30여군데에 공급하는 S통상은 실명제 실시 열흘만에 한 거래업체에서 1천만원 부도가 나자 거래업체들을 재검토,이 가운데 50여개 업체에 원료공급을 중단했다. 이 업체 사장과 상무이사는 『좀 크다 싶은데서 부도 한번 나면 5∼6개월 헛장사하는건데 굳이 무리할 필요 있느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한다. 특히 의류 가구 등 무자료 거래관행이 일반화된 업계일수록 원자재 공급업체들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현금결제를 요구하면서 원자재 납품을 꺼려 자재난이 닥치고 있는 상태이다. 부도가 나거나 대금을 연체한 것이 아닌데도 단지 「우려」만으로 거래가 중단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심리는 비단거래 관계뿐 아니라 투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명제 실시직전인 지난 7월말 반월 날염협동조합회원사 5개 업체가 공동으로 날염품질 향상을 위해 전처리공장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실명제가 실시된 이래 투자의욕 상실로 중단한 것도 그 예이다. 법인업체가 실명계좌에서 9백만원을 인출하는 것은 국세청 통보 해당사항이 아닌데도 『웬지 꺼림칙해서』 경리사원에게 3백만원씩 세차례에 걸쳐 나눠 인출하게 했다는 인천 남동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의 이야기는 중소기업계를 위축시키고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김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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