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식만 잘돼야” 이기적 치맛바람/고액 과외·학원보내기등 서로 경쟁/정상적인 학교수업 입시위주로 바꿔놓기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높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경제성장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그러나 치맛바람으로 불리는 교육열은 학교교육의 파행 운영,엄청난 사교육비지출로 인한 가정경제의 압박과 계층간 위화감 조성 등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선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상오 11시부터 2시간동안 서울시내 31개 인문계고교 문과 3학년 학부모 5백여명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문과생들에게 불리하게 출재됐다』며 교육부에 「이과생들의 교차지원 저지를 위한 가산점제 실시」를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학부모들이 작성한 유인물에는 『소수집단인 재수생의 피해를 막기위해 이과학생의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재수생은 재학생보다 1년 더 공부했으니 입시에서 재학생이 유리하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시위현장에는 교육부관계자들이 면담을 위해 나와 있었지만 학부모들간에 의견이 엇갈려 대표자를 선정하지 못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학부모들은 운동권학생들의 애창곡인 「아침이슬」을 부르며 아들뻘되는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경찰차에 실려 벽제 미사리 등 서울 근교로 강제해산됐다.
이날 시위에서 엿볼 수 있듯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가끔 『내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선 못할 게 없다』는 맹목적이고 이기적인 대학진학열기로 분출된다. 고액과외 등 자녀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개인적으로 아낌없이 돈을 쓰지만,전체 학생이 보다 좋은 교육환경에서 보다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동체차원의 학부모활동에는 소극적인 것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교육열의 단면이다.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에 대해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권리고 갖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26조3항에는 「부모는 그 자녀에게 행할 교육의 종류를 선택할 우선적권리를 지닌다」고 명시돼 있다. 지방교육자치제의 실시에 따라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대해 행사하는 권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맹목적인 대학진학열기에 휩싸인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과 권리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90년 기준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9조4천2백71억원으로 8조6천9백72억원에 불과한 공교육비보다 7천2백99억원 많았다. 더욱이 공교육비중에서 수업료 등 사부담이 3조3천8백67억원으로 38.9%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교육비의 70% 이상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는 고액학원과외 등 입시산업쪽으로 흘러들어 결과적으로 학교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찬조금품 징수금 등의 조치로 각급학교는 운동회조차 열기 힘들 만큼 쪼들리고 있지만 학원과 참고서시장 등 입시산업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
사교육비의 증가로 학부모들의 부담과 희생은 무한정으로 늘어만가고 있다. 지방에 근무하는 공무원 남편과 떨어져 서울 송파구의 13평짜리 잠실 주공아파트에서 고1,고3짜리 두 아들과 생활하고 있는 주부 Y씨(43)는 2년전부터 보험외판원을 시작했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두 아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Y씨는 『아무리 줄여도 한달 평균 1백만원 이상이 교육비로 지출된다』고 말한다. 수업료(1기분 30만원) 교과서대금(1년치 5만여원) 교복비(7만여원) 등 기본적인 교육비보다 학원비 참고서값 등 입시준비에 들어가는 경비가 훨씬 많다. Y씨 뿐만 아니라 Y씨가 사는 아파트에서 자녀들의 과외비마련을 위해 우유배달 화장품외판원 등 부업전선에 나선 주부들을 쉽게 발견할수 있다.
이처럼 자녀의 대학진학을 위해 큰 부담을 희생을 치르는 학부모들은 자율학습 및 보충수업폐지 등 입시교육해소를 위한 교육당국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한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K씨(52)는 성적이 상위권인 고3 딸을 두고 있다. K씨는 『돈있는 사람들은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폐지해도 과외를 시킬 수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우리처럼 생활이 어려워 공부방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학교만 믿을 수 밖에 없다』며 보충수업과 자율학습폐지에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런 경향은 중상층이상의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전인교육 좋지요. 하지만 지금 사회는 경쟁사회여요. 전인교육한다고 축제나 열고 하면 공부는 언제 시킵니까?』 기독교계통 학교인 서울 D고교 교장은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이같은 항의전화를 받았다. 비교적 생활이 넉넉한 이 학부모는 교장에게 공부에 방해가 되니 학교축제를 열지 말고 1주일에 2시간인 예배와 성경시간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교육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의 교육참여는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한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참여가 맹목적인 대학진학열기의 분출이라는 비정상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각 고교에는 육성회,어머니회,학생선도위원회,체육진흥회 등 다양한 형태의 학부모회가 있지만 활동은 미미하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대학진학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빈번하게 학교를 방문하지만 육성회나 어머니회의 임원을 맡기는 꺼려한다.
학부모들이 학부모회 참여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부담 때문이다. 올해부터 각급학교의 찬조금품 징수가 금지됐지만 학부모회 간부들은 여전히 비품비 등 학교운영비중 상당부분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S고 육성회 임원인 주부 L씨(54·강남구 신사동)는 최근 고3교실에 한해 TV모니터를 설치하는 문제를 다른 학부모들에게 얘기했다가 『괜히 돈쓰고 욕먹는 일을 왜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L씨는 『찬조금품 징수가 금지된뒤 「생색도 안나는 육성회에 들어가 골치 썩느니 차라리 담임선생님에게 개별적으로 성의표시하는게 훨씬 실속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이 육성회활동을 기피하지 최근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학부모들에게 육성회임원이 돼 달라고 부탁하면서 『육성회 임원이 되면 자녀에게 제한돼 있는 도서실 이용권을 우선적으로 주겠다』고 제의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학부모회에는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소수의 부유한 학부모들만 참여,치맛바람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강북 J고의 K교사(32)는 『우리학교 어머니회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야유회 가는 일입니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에게 꽃 한송이 달아주는 것 말고 학교를 위한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틈만나면 온천등지로 놀러만 다녀요』라고 학부모회의 활동을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개별 학교단위의 학부모회 활동이 이처럼 위축돼 있는 것 과는 달리 사회운동차원의 학부모활동은 최근 매우 활발해지고 있는 등 바람직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89년에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가 창립됐고 90년에는 「인간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 연대」가 결성됐다.
전국 5개부지와 13개 지회에 1만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의 활동은 크게 학부모들의 권리찾기운동과 교육연구사업으로 나뉜다. 권리찾기운동의 일환으로는 돈봉투 없애기 운동,육성회비 반환청구 소송,고교입시부활 반대 등 교육제도에 대한 학부모들의 의견제시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교육연구로는 교육환경,교육제도,교육정책 등에 관한 공청회,토론회개최와 설문조사실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인간교육을 위한 학부모연대는 88∼8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5회에 걸쳐 주관했던 「중등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화모임」에 참가했던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결성됐다. 이 단체는 학부모들이 오늘날의 심각한 교육문제에 큰 책임이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입시교육을 추방하고 인간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밖에 학교주변의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천 YMCA의 「바른교육을 위한 어머니 모임」도 교육환경개선에 기여하고 있는 바람직한 학부모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실시에 따라 필요성과 당위성이 더욱 커진 학부모들의 학교교육참여를 치맛바람 차원에서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선 학교내 학부모조직의 연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부모회의 어제와 오늘/광복후 교육재정 확보차원 후원회로 출발/사친회·기성회 거쳐 70년대 육성회 정착
우리나라의 학부모회는 광복이후 지금까지 몇차례 명칭은 바뀌었지만 줄곧 학부모의 교육권행사라는 본래 취지보다 학교가 부족한 경비를 학부모들에게 의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운영돼 왔다.
▷학교후원회◁
(45∼53년) 급증하는 취학인구에 비해 교육시설이 크게 부족하자 정부는 수익자부담원칙에 의한 교육재정 확보차원에서 후원회 성격을 띤 각종 학부보단체를 발족시켰다. 전쟁재해 학생후원회(46년) 사범학교후원회 연합회(48년) 서울시 중등학교 후원회 연합회(49년) 국민학교 후원회 총연합회(53년) 등이 속속 발족,교실확충과 교원의 생계비보장 등 물질적 후원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이 후원회들은 부족한 교육시설 확보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나 학교행정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후원금액수에 따른 학교간 격차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사친회◁
(53∼62년) 후원회의 활동이 지나치게 물질적인 지원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정부는 「학교와 가정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학교교육의 효과를 높이고 사회교육까지 신장시킨다」는 취지에서 학교후원회를 사친회로 개편했다.
그러나 극심한 교육재정난으로 사친회활동도 설립취지를 살리지 못한채 6·25로 파손된 학교시설 복구,교원생계비 보조,극빈아동 급식 등 학교재정지원에 편중됐다. 사친회는 회비 강제징수,목적외 사용,돈 있는 학부모의 위세와 탈선 등이 사회문제로 비화됨에 따라 기성회로 개편됐다.
▷기성회◁
(62∼70년) 기성회는 부족한 교육재정을 학부모의 물질적 후원으로 충당하기위해 설립됐다. 63∼65년 기성회비로 교실 3천92개를 새로 짓는 등 전체 회비의 65% 정도가 부족한 교육시설 확충에 투자됐으나 교원의 봉급문제가 심각해진 64년 이후엔 전체 회비의 60% 이상이 교원후생비로 쓰였다.
그러나 교사가 회비를 과다하게 징수하거나 회비이외의 잡부금을 거둬 유용하는 부작용이 심해짐에 따라 해체됐다.
▷육성회◁
(70년∼) 잡부금을 둘러싼 비리가 빈발하자 정부는 아예 「잡부금 양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육성회를 발족시켰다. 육성회설립의 근거가 된 「학교교육정상화에 관한 지침」에는 『국가재정형편과 관련,실질적 무상교육이 실현될 때까지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최소한도의 교육비를 협찬,부담하는 방안을 승복한다면 이를 받아들여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따라 종전의 기성회비가 40여가지 잡부금을 육성회비로 일원화하고 다른 잡부금은 일절 징수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부당한 찬조금품 징수 등의 문제는 계속 제기돼왔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이원락·김현수·장인철·여동은·현상엽기자(사회부)
오태근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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