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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혁명·보수/최상룡(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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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혁명·보수/최상룡(한국논단)

입력
1993.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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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도덕적 우선권을 가진 말은 민주화였다. 90년대에 들어와 특히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이래 바로 그 민주화의 자리를 메우면서 압도적인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말이 바로 개혁이다. 이처럼 개혁은 흡사 민주주의처럼 무조건 좋은 말이며 너무나 자명한 주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혁의 당위성은 무상의 명령으로서 아무도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압도적 시대정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개혁의 방법과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없고 더욱이 개혁의 장래와 결과에 대한 전망은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지지만큼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개혁이 참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개혁의 이미지를 가질 필요를 강하게 느낀다.

무릇 모든 개념은 내포와 외연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 의미내용과 적용범위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개혁이 한 시대의 정신을 대표하고 정통성있는 정부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열쇠개념이 되려면 좀더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든가,안정속의 개혁이라든가 또는 변화와 개혁이라는 두말을 병렬시킴으로써 개혁이 변화를 지향하나 혁명도 보수도 아닌듯한 인상을 심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개혁과 혁명은 어떻게 다른가. 근대적인 사회주의가 등장한 이래 개혁 내지 개혁주의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왔다.

○편가르기는 곤란

이 경우 개혁은 체제 자체의 혁파를 의미하는 혁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혁과 개혁주의를 개량과 개량주의란 부정의 언도로 매도해왔던 것이다. 당국이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했을 때도 개혁은 혁명이 아님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개혁과 사회주의 혁명과 근본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일뿐,혁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는 개혁이야말로 참다운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시민혁명의 이론가 존 로크는 혁명과 반란을 구별하여 반란은 정부와 체제를 전복하는 것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혁명의 존재이유를 누구보다도 역설하면서도 빈번한 혁명을 거부했다. 로크에 있어서 혁명은 체제의 안정을 재생산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회혁명을 불필요하게 하고 나아가서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개혁이 바로 참다운 혁명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도록 혁명=사회주의혁명이라는 등식에 익숙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볼때 개혁은 혁명이 아니라고 할 때의 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며 개혁이 가히 혁명적이라거나 혁명적인 변화를 수반할 때는 그 혁명은 로크의 시민혁명적인 함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로크가 경계했던 반란은 그후 프롤레타리아의 성장과 함께 계급사관과 결합으로써 사회주의혁명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개혁과 보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은 보수라는 말을 싫어하고 기득권층을 일괄하여 보수 또는 반동으로 편갈이 해버리려는 충동을 자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개혁이 제재의 혁명적 부정이 아닐진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보수와의 연결고리는 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지난 반세기동안 강요된 냉전시대를 살아오면서 좌와 우,진보와 보수,그리고 혁명과 반동이라는 엉성하게 정의된 개념을 남용해왔다. 사실 이와 같은 선악 이분법의 상황에서는 안이한 선택이 있을뿐 성숙한 정치적 사고가 나오기 힘들다. 이 양극 사이에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데서부터 참다운 정치적 사고가 싹튼다. 개혁이란 발상은 좌와 우,혁명과 보수간의 긴장감속에서 나오는 건전한 정치적 사고이다. 그러기에 개혁은 우파의 부패와 좌파의 환상을 극복할뿐만 아니라 진보파의 양심과 보수파의 지혜를 결합할 수 있는 사려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라는 발상은 건설적인 개념이나 그 진보를 독점했던 체제로서의 사회주의가 멸망했고 보수주의조차 쓰기를 꺼려하는 말인 보수가 오히려 오늘날 세계의 대세를 주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에 의한 보전

지금까지 사회혁명파는 개혁파를 간교한 보수로 매도하며 보수원류보다 개혁파를 더 경계하고 싫어해왔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하여 우리는 이러한 근친증오현상을 본다. 그리고 보수,반동세력은 개혁세력을 곧잘 「빨갱이」로 낙인 찍어 버린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가장 자각적인 보수주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를 정의하여 「변화에 의한 보존」이라고 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은 역사적 전통이나 문화를 소중하게 보존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거기다 변화를 수반하는 보수이니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안정속의 개혁과 그 본질에 있어서 다를바 없다. 우리의 개혁이 진정으로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골격을 유지하는 개혁이라면 건강한 보수세력과의 공존과 동맹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영삼정부가 반복해서 주장하는 「안정속의 개혁」,「변화의 개혁」,「온건개혁」 등은 혁명적 보수에 대한 개혁의 위상을 상징하는 표현들인데 그 참다운 의미는 체제 자체의 혁명적 파괴가 아니라 체제를 위한 자기 개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개혁은 체제의 안정을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시민혁명적 성격과 시대정신에 걸맞는 보수의 흐름을 결합할 수 있는 동태적 개념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대 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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