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동의땐 일괄조사 길열려/거부하면 축소 시인하는 결과금융거래 비밀보장 문제로 난관에 부딪쳤던 공직자 금융재산 실사가 「대상자들로부터 동의서를 받아낸다」는 묘수를 찾아냄으로써 위법을 피해 무리없이 실행할 수 있게 됐다.
공직자의 등록재산 중에서도 예·적금 주식 채권 등 금융재산은 진위 여부를 가려보기 위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일괄조사에 나설 경우 「8·12」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을 스스로 어기는 결과를 낳게 되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긴급명령 제4조는 「본인의 동의나 요구없는」 특정인에 대한 금융재산 일괄조사를 명백히 금지하고 있다. 동의나 요구없이 조사하려면 전산망을 통해 단번에 일괄적으로 재산상황을 보지 못하고 거래점포마다 일일이 다 챙겨야 한다.
재무부는 「본인의 동의나 요구」라는 이 단서에 주목,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았다. 긴급명령상의 각종 비밀보호장치는 본인의 동의없는 일방적인 금융거래정보 누설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본인의 동의서를 받게 되면 일괄조사가 가능해 각종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해소된다. 금융거래의 비밀보장에 전혀 저촉됨이 없이 효율적 실사를 가능하게 하는 카드가 바로 동의서인 것이다. 공직자 입장에서 동의서의 추가제출을 거부하면 그만이겠지만 거부할 명분이 없다. 동의서 제출거부는 금융재산 누락과 축소가 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행위가 되는 탓이다.
부동산재산의 조사는 비밀보장 조항이 없기 때문에 국세청이나 내무부의 전산망을 두드려보면 누락이나 축소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아 낼 수 있다. 그러나 금융재산이 제대로 등록,공개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각 은행과 증권사 단자사 등에 개인별 금융재산 실태를 알아달라고 요청할 경우 영락없이 긴급명령 제4조를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돼 3년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게 된다. 아울러 이에 응한 금융기관장도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되는 한편 후속적인 문책조치를 받게 된다.
본인의 동의없이 긴급명령을 어기지 않고 공직자재산을 실사할 수 있는 방법은 조사범위를 특정점포에 한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조사에 불과하다. 긴급명령 제4조1항의 5호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해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할 금융거래 내역은 예외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보의 제공을 요구할 때 반드시 문서로 ▲거래자의 인적사항 ▲사용목적 ▲요구하는 정보의 내용 등을 명시하되 금융기관의 특정점포에만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즉 「홍길동」이라는 이름으로 A은행에 금융재산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볼 수는 없고 A은행의 특정지검에 홍길동의 재산이 얼마 있는지만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직자 금융재산을 실사하려면 은행에서 신협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1만여 점포에 일일이 문서로 정보제공을 의뢰해야 한다. 가뜩이나 금융실명제로 금융기관 직원들이 실명확인이다,실명전환이다 해서 정신없이 바쁜 마당에 공직자 재산실사까지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관보를 통해 1급이상의 공직자재산을 공개한 것은 동의서는 없지만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본인들이 직접 작성한 자료들이므로 긴급명령이 적용되지 않는 사항이다. 긴급명령은 금융기관을 거칠 때에만 해당된다.
이번에 실사과정에서 공직자들로부터 동의서를 받더라도 부모재산에 대해선 못건드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자나 직계비속(자녀)에 대해선 세대주로서 한꺼번에 동의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직계존속에 대해선 그러한 해석이 무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의 공직자 금융재산 실사는 다행스럽게 동의서라는 해결책이 있었으나 앞으로 금융거래의 비밀보호장치는 금융기관의 감독,불법적인 소득의 은닉에 대한 조사 등에 적지않은 장애물이 될게 확실하다. 비밀보장이 의외로 매우 엄격하게 돼 있는 것이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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