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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 국방위·건설위 증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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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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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P 기종변경 청와대압력 없었다”/“F16선호에 F18선택 부담감느껴/정 전 총장 전역사유는 인사비리탓”/이상훈 전 국방/F16기종 변경 가장 큰 이유는 가격/노 전 대통령 모든차원 재검토 지시/이종구 전 국방○국방위

◇이상훈증인(전 국방장관)

▲곽영달의원(민자)=KFP기종을 F18로 선정하고 대통령재가를 얻는 단계에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모두 세차례에 걸쳐 대통령께 보고했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어려움이나 압력은 없었다.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압력을 가해올 처지도 안됐고 다른 경로로도 직접 압력을 받은바 없다. 소신껏 MIG29에 대한 대응능력 등을 고려해 F18이 최적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지금도 소신에 변함이 없다』

▲곽 의원=어렵게 재가를 얻은후 91년 3월28일 기종변경이 결정됐을때 어떤 생각을 했나.

『F16의 결함이 보완되고 가격문제 때문에 그렇게 된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F18선택을 후회하거나 F16선정이 잘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곽 의원=김 전 수석이 직접 압력은 아니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한 일은.

『89년 12월20일 최초 기종결정 바로 전날인 12월19일 김 전 수석이 나를 방문한것은 사실이다. 김 전 수석은 「보고때문에 걱정돼 준비상황을 확인하러 왔다. 대통령이 결심할 수 있도록 일방적으로 어느기종을 단정하지말고 장단점을 비교해 보고토록 하라」고 간곡히 얘기했다. 강압을 가할 처지는 아니었고 사정을 했다』

▲정대철의원(민주)=3차 보고직전 김 전 수석이 방문해 요청한 내용은 결국 회유가 아닌가.

『김 전 수석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정 의원=그밖에 김 전 수석이나 청와대의 설득,회유는 없었나.

『없었다』

▲정 의원=정용후 전 공군 참모총장의 전역사유에 대해 정 전 총장에게 F18 고집때문이라고 말한 사실이 있나.

『정 전 총장의 전역은 인사비리 때문이었다. 보안사에서 비밀리에 조사한뒤 비리가 드러났다며 내게 처리를 요청해왔다. 그래서 전역시켰다. 김정열 전 총리 상가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했는데 정 전 총장이 먼저 「비행기때문에 전역했다」는 얘기를 꺼내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으나 잘 모르겠다」고 말한 적은 있다. 내가 그런 얘기를 먼저 한적은 없다』

▲정 의원=국방장관 해임도 외형상 윤석양 이병사건에 대한 인책이지만 이면에는 F18선호가 작용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이병 사건으로 야당이 「정치사찰」을 규탄하는 분위기속에 청와대로 가서 사의를 표했다. 통치권자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자진해 사표를 냈다』

▲서수종의원(민자)=89년 11월16일 2차보고때 대통령이 F16에 공대공 중거리유도탄 장착가능성,애초예산인 40억달러를 10억달러나 초과하는데 따른 재원조달방안,기술결정후의 가격상승과 기술이전 조건후퇴 등을 주의해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었나.

『사실이다』

▲서 의원=가용재원 조달방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했나.

『F18 8천3백억원,F16 2천5백억원이 모자라 다른 11개사업을 조정해 조달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서 의원=계약후 조건변경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에는 어떤 조치를 했나.

『가격상승 얘기는 있었으나 해임후 본격논의돼 알지 못하고 장관직을 떠났다』

▲강창성의원(민주)=89년 12월20일 F18 결정후 청와대에서 나와 정용후 전 총장에게 「공군조종사들이 원하는 기종을 선택해 기쁘다. 문제가 생기면 청문회에가서라도 떳떳이 얘기하겠다」고 했다는게 사실인가.

『그런 소신은 변함이 없다』

▲강 의원=바로 전날인 12월19일 김 전 수석이 찾아와 「F18과 F16이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고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나.

『대통령이 결심할 때 융통성을 가질수 있도록 한 기종을 강조하지 말라고만 얘기했다』

▲강 의원=89년 8월19일 정 전 총장을 불러 「인사비리가 있으니 내일부터 입원해 치료받으라」고 지시한게 사실인가.

『보안사로부터 비리보고를 받고 고민했다. 정 전 총장은 내가 추천해 총장이된 사람이었다. 비리로 현직을 물러난 예도 없고해 공군과 개인의 명예를 위해 그런 조치를 취했다』

▲강 의원=89년 11월1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방미 당시 성남 비행장에서 정 전 총장을 만나 「대통령이 F16을 선호하는 듯하니 심사숙고하라」고 말한 적이 있나.

『기억나지 않는다』

▲강 의원=F16 결정당시 국방부는 이미 F16이 퇴역할 것을 알고 조심했고 이회창 감사원장도 「국방부와 공군이 F16은 4,5년후 퇴역할것을 알고서도 청와대 압력으로 기종변경을 한 것같다」고 말했는데 증인의 견해는.

『나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임복진의원(민주)=3번의 청와대 보고에서 노 전 대통령이 종합적인 재검토를 그때마다 지시한 것은 사실인가.

『사실이다』

▲임 의원=대통령이 F16에 애착을 가진듯한 느낌은 없었나.

『대통령이 내게 F16에 대해 검토해보라고 얘기한 적이 없어 소신껏 검토해 보고했다』

▲임 의원=미 업체로부터 F18결정과 관련,로비를 받은 일이 있나.

『MD사의 로비는 없었다』

▲임 의원=MD와 GD가 활발한 로비를 편 사실을 몰랐나.

『공군 예비역장성들을 통해 로비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임 의원=삼성항공이 F16 1백20대를 원한다는 얘기를 알았나.

『몰랐다』

▲나병선의원(민주)=KFP 사업추진전 항공산업 육성방안을 놓고 84년 5월29일 공군 참모총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보고한 사실을 알고있나.

『얘기들었다』

▲나 의원=84년 5월30일 항공산업육성위 회의록을 본적이 있나.

『한번 보았다』

▲나 의원=KFP를 항공산업육성과 결부시켜 면허생산방식을 택한 것은 대기업에 특혜를 준것 아닌가.

『잘 모르겠다. 5공때 업체에 하나씩 나눠 준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의원=대우는 F16동체를 납품한 경험이 있고 대한항공은 조립경험이 있어 주계약업체 검토시 삼성항공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가 결정과정서 바뀌었다는게 사실인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

▲나 의원=항공산업 육성차원에서도 F18도입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했다』

▲장준익의원(민주)=89년 10월20일 F18결정후 미국 MD사와 계약을 체결했나.

『계약을 못했다』

▲장 의원=이유는.

『미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그것이 늦어져 퇴임시까지 계약을 못했다』

▲장 의원=김 수석이 「단일 기종으로 보고하지 말라」는 것은 F16을 건의하라는 얘기인데 그런 감을 못잡았나.

『그런식으로 의견을 유도하는걸 느끼지 못했다』

▲권노갑의원(민주)=공군과 국방부가 F18이 우수하고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청와대가 F16을 고집해 부담감을 느낀것은 사실인가.

『그런 분위기는 있었으나 청와대에서 직접 지시한 사실은 없다』

▲권 의원=1차보고시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2차보고에서 F18 선정보고를 하자 대통령이 F16에 공대공미사일 장착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게 사실인가.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를 지시했다』

▲권 의원=3차보고에서 F18을 재가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가격이 더이상 오르면 안된다」고 얘기했나.

『가격문제도 여러번 강조했다』

▲권 의원=정 전 총장해임 사유는.

『인사비리냐,F18때문이냐는 것은 모르겠다. 외형상으로 나타난 것은 인사비리 때문이나 더이상은 알수 없다』

◇이종구증인(전 국방장관)

▲나병선의원(민주)=증인이 90년 10월26일 장관부임 18일만에 대통령에게 KFP 관련보고를 하게된 배경은.

『기종이 F18로 결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12월말 계약서에 서명토록 되어있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12억달러나 가격이 인상됐다. 이런 가격으로는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실무보고를 들었다』

▲나 의원=대통령에게 처음 보고할 때 F18기종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대수와 획득시기 등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증인은 F16으로 기종을 변경하자는 의사갖고 보고를 했는가.

『당시는 기종변경을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미 F18로 결정된 사실을 알고있어 이를 전제로 어떻게 KFP사업을 추진할 것이냐를 고민했다』

▲나 의원=대통령추가 지침이 장관의 업무처리에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작용하나.

『대통령의 당부말씀은 가볍게 취급 할수없다. 상당히 비중있게 참고로 했다』

▲나 의원=이양호 당시 합참3차장을 미국에 출장보낸 일이 있나.

『있다』

▲나 의원=그에게 무슨지침을 준 일이 있는가.

『KFP 사업추진에 많은 정보가 필요하니 광범위하게 정보수집을 해오라고 지시했다』

▲나 의원=그가 귀국후 어떤한 보고를 받았는가.

『F16에 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고받았다』

▲나 의원=당시 이 장관이 기종변경 장본인은 아니지 않는가.

『5개월간 검토하는중 많은 실무자로부터 건의를 받았다. 나는 그 건의를 검토 승인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결정받는 중간단계였다』

▲나 의원=그러면 기종변경의 최종결정권자는 대통령인가.

『그렇다』

▲나 의원=그 최종책임도 대통령이 지나.

『책임진다기보다는 대통령이 결정권을 갖고있고 그 결정권을 보좌하는 것은 참모들이라는 것이다』

▲서수종의원(민자)=KFP 기종변경에서 가장 큰 요인은.

『가격문제였다』

▲서 의원=MD사가 추가로 요구한 1조4천6백억원(12억달러)을 조달하려면 기존의 전력증간사업 계획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상황이었나.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 의원=노 대통령이 8·18계획 전체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했다는데.

『8·18과 KFP연관관계가 기억나지 않는다』

▲서 의원=기종변경 최종 결정보고전에 김종휘씨로부터 기종선정에 관한 지시나 언질을 받은적이 있는가.

『그와 관련,누구로부터도 직접 지시를 받은 일이 없다』

▲서 의원=당시 증인은 대통령이 기종변경을 바라고 있다고 느꼈었나.

『전혀 그런 감을 느끼지 못했다』

▲서 의원=91년 3월 F16으로 기종을 변경해서 보고하게된 이유는.

◎“「평화댐」 조기착공 안기부 이상서 결정”/“댐 위치는 건설부·타부처 협의결정/긴급공사의 경우엔 수의계약 가능”/이규효 전 건설/“올림픽 개최위해 필요한 조치 동감”/“각부처별 홍보방안 안기부서 제시”

『나는 전문 지식이 없었다. 국방부내 참모나 부하들의 이견과 관계 전문위원회의 건의를 검토,적당하다고 판단돼 승인한 것 뿐이다. 나는 부하를 신뢰했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서 의원=청와대나 대통령 등 외부의 지시나 통고없이 하부로부터 건의대로 보고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장준익의원(민주)=증인은 90년 10월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할때 F16으로 변경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95% 사실이다』

▲장 의원=그런데 노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나오면서 급선회가 됐지않았는가.

『대통령은 여러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국익에 맞게 결정하라는 지시였다』

▲임복진의원(민주)=증인이 90년 10월에 보고할때 노 대통령은 항공산업의 발전측면도 고려하라고 했는데 그것은 어떤 뜻인가.

『그런 당부는 그때가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전부터 대통령은 기술전수를 위한 강조의 말씀을 많이했다』

▲임 의원=차세대전투기를 왜 1백20대로 결정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

『공군참모총장에게 물어보라. 내가 알기에는 그것은 공군이 연구한 대수였다.

▲임 의원=미국 항공사들의 요구가 아니었나.

『전혀 들은 바 없다』

▲윤태균의원(민자)=F16은 무조건 나쁜 비행기라고 인식되고 있는데.

『국민소득 2만달러인 미 공군의 주력기가 F16이다』

▲윤 의원=F16을 선택하게 된 절대적 고려요소는.

『핵심적인 것은 어떤 상대와 싸우느냐 하는 전장의 문제. 이 무기로 전략적인 우위확보가 가능하느냐 하는 3가지 문제이다.

우리는 F16이 성능이 조금 나쁘다 하더라도 훈련을 조금 더 하면 떨어지는 성능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강창성의원(민주)=KFP 기종선정에 앞서 우리 공군 조종사 6명을 미 공군기지에 보내 훈련을 시켜본 결과 그들은 F16이 F18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했다는데.

『그런 기억없다. 그러나 F18이 우수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강 의원=최근 미국정부가 F16기 구매중단을 결정한 사실을 아는가.

『신문을 보고 알았다』

▲강 의원=이유는 F16이 낡은 기종이라는 것 때문이다. F16이 우리에게 충분하다는 증인의 답변은 잘못된 것 아닌가.

『잘못된 것 같다』

▲정대철의원(민주)=대통령이 90년 10월에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기종변경을 포함해서 모든 방안을 강구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F16으로 기종변경을 지시한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 의원=참새 1백마리가 독수리 1마리를 당할수 있나. F16숫자가 많다고 전략상 문제가 해결되는가.

『빈대잡는데 도끼를 쓰겠는가. 북한과 상대할때 돈만 있으면 F18이나 F16을 갖고도 지킬수 있다는 판단아래 결심했다』

◇한주석증인(전 공군 참모총장)

▲임복직의원(민주)=마종인과 어떤 사이인가.

『처남이다』

▲권 의원=마씨가 GD사와 관계있는 것을 알고 있었나.

『몰랐다. 그분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임 의원=공군에서 왜 1백20대를 계속 요구했나.

『99년까지의 자연손실분 1백20대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권 의원=기종이 바뀐다면 1백20대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나.

『그렇다. F18을 고집할 경우 1백대밖에 구매하지 못하고 F16이라면 1백20대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대철의원(민주)=F16과 F18이 동급이라는 비교는 F16의 성능을 보완한 경우를 두고 한 얘기인가.

『그렇다』

▲정 의원=군산에서의 모의전투결과 F18의 F16공격이 1백% 성공한 것을 알고 있나.

『결과는 정확히 모르나 모의전투 사실은 알고 있다』

◇정용후 참고인(전 공군 참모총장)

▲강창성의원(민주)=90년 노 전 대통령의 미국방문시 성남 비행장에서 이상훈 전 장관을 만났을때 무슨 얘기를 들었나.

『F18은 아무래도 힘들겠으니 F16으로 가는게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강 의원=이 전 장관의 갑자기 달아진 태도에서 아무것도 못느꼈는가.

『두번을 F18을 건의해도 결제가 안나니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강 의원=92년 9월 김정열 전 총리 영결식장에서 이 전 장관이 무슨 얘기를 했나.

『젼역후 만 2년만에 만났는데 「정 장군이 90년 나간것은 비행기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서수종의원(민자)=전역사유가 F18때문에 이뤄진 보복성 인사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정대철의원(민주)=공군에서 「F16타면 죽으러 가는 기분」이라는 얘기가 있었던게 사실인가.

『일부에서 그런 얘기가 있었다』<이계성·황영식기자>

○건설위

◇이규효증인(전 건설부장관)

▲김옥천의원(민주)=평화의 댐 건설지점은 어느 기관에서 선정했는가.

『당초 국방부가 주관해오다가 댐 건설문제가 부각되면서 건설부가 위치선정 등을 주도적으로 담당했다. 단 관련부처가 협의를 했기때문에 위치선정은 정부가 했다고 할 수 있다』

▲김 의원=기술 용역업체들이 현장답사결과 진입도로,화천댐의 수위 등을 고려,현재 댐이 서있는 제2후보지점인 수하리보다 제1후보 지점인 화천군 수상리를 타당하다고 보고했는데 바뀐 이유는.

『용역보고서가 반드시 어느 한 지점이 유리하다고 한 것이 아니고+장·단점을 다 분석해 놓았다. 건설부는 맨 아래쪽이 방어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김 의원=감사원 감사나 안기부의 보고가 다 청와대가 했다는데.

『전 대통령은 7차례의 보고를 듣고 담당부처의 견해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위치선정의 잘못이 있다면 전적으로 내탓이다』

▲구자춘의원(민주)=현장검증을 가보니 건설부가 예산낭비를 많이 했더라. 당시 평화의 댐 축조를 위해 화천댐에 40억∼50억원을 들여 비상수로를 만들었다가 다시 막았다.

『평화의 댐에 있어서 3대 원칙이 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시한성이다. 88년 5월말을 평화의 댐 완공시한으로 상정한 이상 87년 6월까지는 가배수로 공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따라서 화천댐의 물이 올라올 경우 공사가 진척이 안되니 할 수 없이 비상배수로를 뚫었다』

▲구 의원=정부가 당시 냉정을 잃었다. 지금 가보니 화천댐 수위가 전혀 공사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이더라. 이 증인이 안기부의 과장에 그대로 이끌려간 측면이 너무 많다.

▲이석현의원(민주)=정부발중 공사는 공개입찰이 원칙 아닌가.

『그렇다』

▲이 의원=그러면 왜 평화의 댐은 수의계약으로 했는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예산회계법상 명시돼 있다. 긴급공사의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

▲이 의원=대통령이 수의계약에 개입하지 않았는가.

『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수의계약과 공개입찰 등 두가지 방법을 다 보고했다. 대통령이 나의 견해를 물어 그대로 결정했다』

▲이 의원=87년 2월초 발주 기본방침을 만든 적이 있는가.

『기억이 안난다』

▲이 의원=(당시 메모를 들어 보이면서 실무자를 통해 이 증인의 필체인지를 확인. 이 증인도 자신의 작성메모임을 시인)이 발주 기본방침에는 시공업체의 기준을 부채비율 4백%이하,금융비율 20% 이하로 정해놓고 있다. 이에따라 7개회사가 해당되게 됐다. 그러나 87년 2월13일 대통령 결제때는 부채비율 5백%이하,금융비율 25% 이하로 조건이 완화돼 있었다. 그 이유는.

『해외건설업체를 선정하려다보니 당초 기준으로는 해당업체 수가 미달돼서 그런 것이다. 당초의 메모형식의 기준이 반드시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 의원=기준 변경으로 새로이 자격을 얻는 업체가 동산토건과 동아건설이다. 그중 동산토건이 본 댐공사에 앞서 1백31억원의 진입도로공사를 따냈다. 동산토건이 맡은 2차도로는 불요불급하지 않았다.

『군사도로와의 연계성을 고려했고 안보교육의 차원에서 방문하는 국민을 위해 어차피 만들 도로라면 빨리 건설하려했다』

▲이 의원=당시 반대한 관료는 없었나.

『기억이 안난다』

▲이 의원=문희갑 기획원차관이 반대했다. 당시 동산토건의 그룹인 두산그룹과 대통령과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평화의 댐 공사를 할당해주기 위해 기준을 완화하고 불요불급한 공사를 맡긴 것 아니냐.

『전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과 관련해 공사특혜를 주지 않았다. 단 당시 해외건설경기가 불경기라 실무차원에서 해외건설업체를 도우려했던 측면은 있다』

▲장경우의원(무)=증인은 86년 11월10일 현지답사를 가기전에 평화의 댐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면서 어떻게 10월30일 대북성명을 발표할 수 있었나.

『금강산댐 중지성명이었지 평화의 댐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건설부가 성명을 발표한 이유는 안기부나 국방부가 전면에 나서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장 의원=결국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성명을 내라고해서 낸 것 아닌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오탄의원(민주)=금강산댐의 수공은 시간을 두지 않고 창졸간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해야 효과가 난다. 그런데 금강산댐이 2백억톤의 저수량을 담으려면 십여년이 걸린다. 수공위협이 정말 있었다고 보는가.

『비상식적인 북한행위로 보아 누구도 수공위협이 없다고 단정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자연수를 합해 12억톤의 물이 금강산댐에서 방류되면 올림픽에 방해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 의원=금강산댐 규모에 대한 판단은 누가 했는가.

『나는 안했다. 안기부가 한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오 의원=(서울 주요건물 침수 예상도를 펼쳐 보이며) 누가 이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는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신경식의원(민자)=평화의 댐 건설을 당시 직선제 개헌저지를 위해 이용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데,증인의 생각은.

『건설부가 순수 기술부서라서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1단계 평화의 댐 건설은 전 전 대통령께서 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유비무환의 자세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 의원=2백억톤의 저수용량이 되려면 20톤트럭 1천대 동원해도 13년 걸리고 완공된 댐에 물이 차려면 14년이 걸려 도합 27년이 걸려야 물이 그정도 차는데 그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말은 맞다. 그래서 전면적인 대응댐을 만들지 않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1단계 가물막이 댐만을 만들었다』

▲최재승의원(민주)=화천댐 비상배수로 공사에서 85년만 금융기관 평점이 미달돼 탈락한 (주)신성에 특혜를 주기위해 시공업체 선정기준 시점을 86년 6월말로 바꾸지 않았는가.

『가장 최근의 기준이 중요해서 선정시점을 바꾸었다』

◇이재명 증인(전 건설부 수자원국장)

▲제정구의원(민주)=안기부 실무국장 회의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

『86년 9월1일 안기부 6국에서 열린 관계부처국장급 대책회의에서 평화의 댐과 관련한 건설계획,홍보방안 등 각 부처별 대책안이 안기부에 의해 제시됐다』

◇박정기 증인(전 한전사상)

▲오탄의원(민주)=평화의 댐 건설로 손해본 것이 있는가.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화천댐에 비상배수로를 설치해 물을 빼는 바람에 발전중단으로 2년여에 걸쳐 67억원의 손해를 입었다』<이영성·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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