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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관운… 「의장파동」 풍운도/타계 백두진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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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관운… 「의장파동」 풍운도/타계 백두진 전 국회의장

입력
199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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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엔 YS의원직 제명 악역백두진 전 국회의장은 우리나라 정치사의 명암을 그대로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그는 관운이 좋은 사람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불행한 일을 많이 겪었다.

재무장관과 두차례의 국무총리,그리고 다시 두차례의 국회의장.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국회의장 시절 두차례 모두 스스로 사퇴서를 제출하는 막다른 상황에 몰렸다. 이른바 「백두진파동」이 그의 파란만장했던 정치역정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6·25와중인 51년 이승만정부에 의해 재무장관에 기용된 백 전 의장은 53년 45세의 나이에 국무총리에 임명된다. 자유당정권 붕괴후인 61년 4월 이천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첫 등원한 백 전 의장은 7대·8대 국회에서 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계속 정치권에 몸담았다. 유신후 73년 첫번째 유정회에 들어가 초대 유정회장을 맡았던 백 전 의장은 79년 10·26후 스스로 국회의장직을 내놓을 때까지 화려한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백 전 의장은 자신의 경력이 말해주듯 대중적 기반에 의한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당대의 최고권력자에 의해 발탁된 임명직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관운이 좋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백 전 의장은 첫번째 국회의장 시절인 71년 국가보위법 변칙처리와 관련한 야당의 사퇴권고인 처리요구로 정국이 혼미를 거듭하던 가운데 스스로 사퇴서를 제출했다 부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백 전 의장은 10대 국회에서 다시 의장에 내정됐으나 유정회 의원의 의장 선출에 반대하는 야당의 투쟁속에서 원구성단계부터 국회의 파행을 부른 「백두진파동」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 백 전 의장은 79년 9월 의사봉을 빼앗기는 소동 가운데 김영삼 당시 신민당총재의 의원직을 제명시키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건축 초기 몇 안되는 인재로 관계에 들어서 출세가도와 험난한 정치역적을 동시에 달려왔던 그는 문민시대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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