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여개월동안 갖가지 이유를 내세워 남북한간의 대화를 완강히 거부해오던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새로운 제의를 통해 대화재개 의사를 밝힌 것은 일단 환영할만하다. 세기적인 데탕트시대의 이 지구상에서 남북한만이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책임이 어느쪽에 있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북한의 새 제의를 전향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대폭 수용,대화재개를 성사시킬 대응제의를 금명간 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자세라하겠다.북한은 이번 새 제의는 결코 놀랄만한 것은 아니다. 지난봄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이후 핵개발을 내세운 일련의 대외적 곡예를 감안하면 얼마든지 예측됐던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새 제의는 종래의 기본자세에는 변함이 없어도 외형상으론 진전된 것이라고 평가할 수있다. 남측이 팀스피리트훈련 등 소위 「핵전쟁연습」을 중지하고 북핵과 관련된 「국제적 공조체제」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나,교환될 특사를 통일담당 부총리급이 아닌 누구도 무방하고 특사교환을 통해 논의할 의제에 비핵화 문제를 정상회담 준비보다 먼저 내세운 것 등은 일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달 핵통제공동위를 재개하자는 남측의 제의를 일축했던 북한이 바로 이 시점에 새 제의를 들고 나온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언젠가 정상가동될 남북대화에 이니셔티브를 잡고 둘째는 남한내 진보세력의 동조를 얻으며 셋째 앞으로 있을 3단계 미국·북한 회담을 원활하게 진행시켜 소기의 성과를 도모하고 넷째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화를 면하고 대화의지 평화의지를 안팎에 과시하려는 것 등으로 분석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이 모든 목표를 포괄한 복합적 요인이 있겠으나 태도 돌변의 결정적 요인은 미국과의 회담이다. 윈스턴 로드 미 국무성 동아담당 차관보도 못박았듯이 『2단계 회담때 북한이 약속했던 IAEA(국제원자력기구)와의 핵사찰 재협의와 남북대화 재개가 이뤄지지 않는한 3단계 회담은 불가』라는 확고한 벽을 의식,서둘러 수정제의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평양에서 진행중인 IAEA와의 사찰협상을 보아서는 앞으로 남북대화 진행이 지극히 어려울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IAEA의 요구는 의심나는 어떤 핵시설도 볼 수 있는 특별사찰이나,북한은 이를 극력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이 남북한간에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실현하려는 참된 의지만 있다면 번거로운 특사교환 등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 중단된 핵통제위를 열어 상호 핵사찰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만인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특사안을 수용하되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선언에 대한 각분위의 즉각 재가동을 반드시 제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새 제의를 환영하면서 앞으로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를 주시하고자 한다. 진실로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긴장완화와 평화를 위해 성실한 자세를 보일 것인가,아니면 모두가 걱정하듯이 단순히 대미 회담의 순항을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삼고 또다시 억지주장과 책임전가를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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