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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있고 「우리」는 없다/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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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있고 「우리」는 없다/이재승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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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집단이기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민주화될수록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이익집단이 폭증하고 목소리도 높아진다. 한 세대만에 문민정부를 다시 맞은 우리 사회에서 이익집단들의 욕구가 분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로비와 데모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로비이스트들을 통해 정부와 의회에서 추진된다.또한 시민적인 지지를 필요로 하는 공익성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데모가 애용되는 수단이다. 물론 연방이나 주·시·군 등 각급 지방정부 당국의 승인을 받는다.

백악관앞 라파예트공원은 아예 시민들의 데모용으로 내놓다시피한 곳이다. 데모가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대립집단간의 위세도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거의 되지 않는 낙태가 미국에서는 뜨거운 감자다. 찬·반세력이 백중하다. 선거공직자들은 섣불리 어느 한쪽을 확실히 지지했다가는 상대편의 적이 돼 목이 열개라도 감당하기 어렵다. 낙태 찬·반 단체들은 연례적으로 워싱턴 DC의 관청가를 관통하는 데모를 벌인다. 서로 힘이 백중하여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상당수는 이처럼 광장으로 나오기전에 관청에서 또는 의회에서 해결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수출국답게 타협과 협상에 능하다.

이것이 안되면 법으로 해결한다. 집단의 이해관계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이해관계가 훨씬 더 법에 호소하는 것 같다. 어떻든 미국 사회에서는 이해관계의 상충을 해결하는 장치가 발달돼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장치가 상당히 미흡하다. 압축성장시대를 거치면서 배금주의의 천민자본주의 사고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때문에 엇갈리는 이익의 조정에 극히 미숙하다. 대아보다는 소아의 이익만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의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크고 작은 집단이기주의의 표출들이 이러한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것 같다.

한방의와 약사의 분규,그린벨트(개발제한지역) 완화문제,쓰레기 소각장 설립반대,실명제 실시저항 등 이곳저곳에서 집단 및 지역이기주의가 동시 다발로 나타나고 있다. 돌발적인 것도 있고 상당히 오랫동안 내연해왔던 것도 있다.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것은 한방의 대 약사의 첨예한 이해대립으로 경희대 등 전국 8개대 한의대학생 3천여명의 유급이 확정된 것이다.

지난 3월23일부터 약사에 대한 한약조제 및 판매를 허용한 약사법 시행규칙의 철회를 요구,수업을 거부함으로써 법정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 대학 재학생들이 기존 업계의 이해관계에 직접 당사자로 참여한 일도 흔치 않은 것이며 더구나 이것으로 해서 사실상 전원 유급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아마 우리 사회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집단이기주의의 희생이라 하겠다.

기존의 한방의와 약사업계들은 책임을 느껴야 할 일이다. 약자라해서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침해당했을 때 누가 목숨건 응전을 하지 않겠는가. 뭣보다 정부의 조정능력 상실이 개탄스럽다.

민주사회는 정글사회가 아니다. 소수의 견해와 이익도 경청되고 존중돼야 한다.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린벨트는 법제정이후 엄격한 집행으로 주민들이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물리적 손실을 입고 또한 생활의 불편을 겪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의 24.6%가 구역지정이후 외지인에 의해 매입된 것이다. 규제완화가 그린벨트 투기의 기폭제가 돼서는 안되겠다. 한편 경제에 태풍을 몰아온 실명제 실시는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경제혁명이다. 「검은 돈」들도 밝은 세계로 나와야 할 때다. 「노블리스 오브리제」(귀족의 의무,있는자의 의무) 정신을 보여줬으면 한다. 정재를 요구하지 않는다. 최소한 법은 수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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