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어쩔 수 없는 일」 주장/한러 동반자관계 악영향 우려1일 구 소련이 대한항공(KAL) 007기를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시킨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러시아 사할린의 네벨스크시에서는 KAL기 희생자 추모식이 거행되는 등 KAL사건은 10년을 끌어온 배상문제만을 제외한채 일단 마무리될 전망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태도는 아직까지 전혀 변한게 없다. 러시아는 지난달 30일 KAL기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발표를 통해 『이 사건은 사고기 승무원의 과실 때문에 일어났다』며 소련당국의 격추책임을 회피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사고기 승무원의 책임만을 강조하고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침범하는 항공기를 격추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상황설명으로 변명했다.
지난 6월15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내린 결론과 유사한 러시아측의 조사결과를 볼때 러시아측은 2백69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건 자체를 냉전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는 듯하다.
러시아측은 당시 레이더에 포착된 미군 정찰기 RC135를 추적하기 위해 요격기를 출격시켰다는 사실과 경고사격을 가했으나 KAL기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영공에 침입한 미확인 비행물체를 정당방위 차원에서 격추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소련 당국이 당연히 책임져야 할 부분을 애써 외면하려하고 있다. 소련전투기가 ▲사고기의 민간기 여부 확인 ▲영공침입시 항법 등 3회 점멸 ▲녹색 로켓발사 경고 등의 사전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고 격추시킨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러시아측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후안무치한 태도로 비치고 있다. 민간항공기를 격추시켰다는 점만으로도 러시아는 국제법상으로나 도덕적으로 결코 책임을 면키 어렵다.
러시아가 배상책임을 KAL측에 떠넘기려는 태도는 자국의 어려운 경제여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혀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태도는 최근들어 밀접해지고 있는 한러관계를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50년대와 60년대에 일어났던 이스라엘의 시리아 여객기 격추사건과 중국의 CPA기 격추사건 등을 보더라도 관련 당사국은 피해국에 잘못을 인정하고 위로조로 일정금액을 지급,최소한의 성의를 표시한바 있다.
따라서 러시아측이 피해국가인 한국과 미국,일본이 공동으로 제기한 배상문제에 대해 끝까지 책임회피로 나갈 경우 애써 구축된 양국의 동반자관계가 금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러시아측은 KAL기 격추 배상문제와 관련,보다 전진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요구된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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