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전∼내달 12일 또 고비/자금운용 단기위주 편중『한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첫 월말 결제일인 31일 금융권은 「월말고비」를 예상보다 비교적 순조롭게 넘겼다며 일단 안도했다. 당초 우려했던 중소기업이나 영세유통기업의 연쇄부도는 발생하지 않았다. 어음부도율이나 부도회사 수도 평소 수준이었다.
그러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추석과 실명전환 의무기일(10월12일) 등 중대고비에 대비,단기자금 운용에 치중하는 등 방어적인 자금운용을 하고 있다. 의외의 변수가 많아 자금을 중장기로 운용하기 곤란하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시중에 자금이 대거 풀렸는데도 회사채 금리는 오르고 또 이같은 금리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시중의 풍부한 자금이 정작 필요한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못한채 금융권에 고여있는 것이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한 소용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권이 단기자금 운용에 치중하고 있는 이유는 『그날이 두렵다』는 금융기관 일선 직원들의 표현으로 요약된다.
「그날」이란 추석(9월30일) 직전에서 가·차명계좌의 실명전환 의무기간이 끝나는 10월12일 전후까지를 뜻한다. 10월12일 전후 거액의 자금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큰손」의 거액자금이 두드러진 움직임없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부분 가·차명계좌로 되어 있어 어차피 움직일 수 밖에 없는데도 아직까지 꿈쩍하지 않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그런 심리다.
따라서 자금을 철저하게 단기로 운용,이런 거액 인출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심리가 금융계에 팽배해 있다. 금리자유화도 이런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즉 연내에 금리자유화가 실시돼 금리가 오를 경우 단기자금은 금리상승에 기민하게 대처,금리상승으로 인한 혜택을 볼 수 있는 반면 중장기자금은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는 채권시장이다. 실명제이후 채권시장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 자금시장 구조가 「단고장저」에서 「단저장고」(만기가 긴 자금의 금리가 높아지는 것)로 바뀌었다. 회사채 등 상당기간 자금이 잠길 상품은 인기가 급락,수익률이 높아진 것이다. 실명제 실시직전인 12일 연 13.55%였던 3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14.35%로 상승,지난해 10월말 수준으로 돌아갔다. 또 발행회사가 회사채를 되가져가는 「리턴현상」도 빈발하고 있고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처분하려는 「덤핑매물」도 나오고 있다. 과거의 「리턴현상」은 주로 「재테크」용이었으나 최근 리턴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회사채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동서증권 최정식이사는 『금융계가 「10월 대란설」을 우려하고 있어도 맹신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만일에 하나라도 내가 담당하는 금융상품이 우리 기관에서 거액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거액 일시인출의 불안감,금리자유화 등 각종 정책에 불가측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통화가 늘어도 자금시장 왜곡은 개선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김경철기자>김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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