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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과의 싸움/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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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과의 싸움/홍선근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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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를 실시한지 2주일여…. 이제 사람들은 실명제를 자신의 생활속에서 실감하고 있다. 그동안 일반 국민들은 실명제 정착을 위해 일선 금융창구에서 겪어야했던 많은 불편과 번거로움을 별다른 불평없이 잘 참아냈다. 금융기관들도 말못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런 건 아직 전초전에 불과하다.금융실명제가 성공하려면 큰손과의 한판 전쟁이 아직 남아 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할 수도 있는 돈을 사이에 둔 것이라서 무기가 없고 피만 흘리지 않을 뿐이지 사실상 전쟁보다 더한 진짜 전쟁일 수도 있다.

초기의 상황은 실명제가 전격적으로 시행돼 큰손들이 완전히 포위된 상태이다. 큰손들은 일체의 기척없이 실명제의 포위망을 뚫는 방법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간혹 조바심 많은 큰손들이 감시병인 금융인들을 매수,단독 탈출을 시도해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투금과 항도투금에서 거액의 가명계좌를 불법으로 실명전환했다가 적발된게 실패의 사례들이다. 성공의 사례는 짐작만 될뿐 확인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큰손들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있다. 성공이 확실히 보장된 방법이 아닌한 모험을 피하는게 이들의 체질이다. 금융창구와 증권시장 채권시장 등이 겉으로는 대체로 평온을 되찾은 듯하지만 실명제와 큰손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대치상태에서 경제와 국민들이 일종의 인질인 셈이다. 경제가 그런대로 괜찮고 국민들의 불편이 사라지면 큰손들이 밀리고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일반 국민들의 금융거래가 더욱 불편해지면 실명제가 밀려 포위망속에서나마 큰손들이 다소 유리해진다.

그러나 이쯤에서 싸움의 대의를 짚어보면 가야할 길은 명백하다. 우선 일반국민들은 단기적인 불편을 감내해야 하고 감시인인 금융인들도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의 역사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설령 경제가 나빠지더라도 실명제편에서 물러설 여지는 거의 없다.

다만 이방의 적에게도 퇴로를 열어주는게 전쟁의 상책이듯 한 울타리에서 공존하는 구성원이니 만큼 명예롭게 퇴진하는 길을 고려해봄직도 하다. 실명제와 큰손의 전쟁이 어차피 집안싸움인데 집안싸움의 본래 속성으로 보나 바깥의 정세로 보나 일전 없는 빠른 마무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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