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는 아직 낙관하기 일러/“지금은 문제점 잠복기” 경계론도정부는 28일 금융실명제 발표이후 2주일간의 시행과정을 자체 평가,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정부의 이러한 중간평가는 자칫 금융실명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태도가 초기 만큼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느슨해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초기의 우왕좌왕하는 일선 금융창구의 혼란이 다소 가라앉은걸 두고 일정한 평가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성급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비롯한 실물경제,자금중개기능에 타격을 받고 있는 금융시장,큰손들의 제도금융권 이탈 등등 엄청난 문제와 위험들이 아직 전혀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당국은 이날 각 부문별 동향보고를 통해 26일 현재 가명계좌의 실명전환율이 31.7%로 예상보다 빠르고 시중금리도 실명제 실시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우려할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명계좌의 실명전환도 금액기준으로 4천여억원에 이르렀고 이 자금의 인출이 많은 편이지만 우려할만한 정도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증권시장은 등락이 이어지고 있으나 실명제보다는 실물경기와 관련돼 나타나는 등락이라고 평가했으며 암달러시장이나 부동산시장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부도기업수는 기간이 짧아 아직 뭐라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세무조사에 대한 불안이 진정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금융시장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정부의 진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바깥으로 노출된 겉모습이 실명제를 발표한지 2주일을 넘기고 있는 현재 상황의 의미를 전부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되고 있다. 당국의 진단은 현상에 대한 평가에 불과하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지금은 문제의 잠복기이다. 심각한 문제들은 대통령 긴급명령상에 마련된 각종 정치들에 의해 표출되지 못한채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일정액 이상의 실명인출 또는 가·차명 보유에 대해 국세청 통보를 한다는 원칙이 중압감을 줘 검은 돈들이 행동을 개시,혼란을 야기할 엄두를 못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은행 증권시장 채권시장 등 어느 금융시장도 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곳이 없다. 지표상으로만 가까스로 종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채권시장의 금리가 14%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면 마치 실명제 이전과 마찬가지처럼 보일지 모른다. 실명제로는 금리는 껍질일 뿐이며 채권시장의 본래 기능인 일반기업의 채권매매는 여전히 위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물경제에 대한 당국의 진단을 보면 우려가 더욱 커진다. 중소기업의 최근 상황에 대해 판단할만한 기간이 경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를 유보하는 것은 신중한 태도가 아니라 무책임한 대응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사채의존이 심했기 때문에 사채시장이 갑자기 사라지자 어찌할 줄을 모르고 허둥대고 있는게 현실이다. 전국적으로 사채의 규모는 5조원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에서 친인척 사채와 소액사채를 빼면 3조∼4조원은 기능마비상태에 놓여 있다. 중소기업의 아우성이 엄살이 아니다. 더 시간을 두고 병세를 진단해 대응책을 내놓으려 했다간 손쓸 틈도 없이 병세가 악화되는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이러한 안이한 진단은 곧바로 안이한 대응을 부른다. 실명제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은 아직 무대위에 올라오지 않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아직 무대밑에서 은밀히 무대위에 등장할 시간을 재고 있는데 정부는 벌써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국은 또 일부 기업인 등 재계 인사와 중상위 계층의 인사들이 외부적으로는 실명제에 찬성하면서도 사석에서는 실명제를 불평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인식은 실명제를 지나치게 사정차원으로 해석,개혁과 반개혁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실명제의 시행과정에서 실물경제의 위축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위축정도가 다름아닌 실명제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소홀히 하고 있는듯한 분위기이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실명제 일지
▲8월12일=김영삼대통령,금융실명제 실시 전격 발표
▲13일=토지거래허가제 3개월 시한 전국 확대
▲16일=중소기업 긴급자금 6천2백억원 추가 지원
▲17일=국세청,1가구 1주택 보유자 봉급생활자 실명제 세무조사 제외
▲22일=변칙국제거래를 통한 기업자금 해외유출 집중단속
▲24일=신용금고에 융통어음 할인 허용
▲25일=은행보증가계수표,CD 발행한도 축소 등 금융기관 수신지 원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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