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치개혁­미국의 예(김경원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치개혁­미국의 예(김경원칼럼)

입력
1993.08.28 00:00
0 0

김영삼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위해 영국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국보다 영국의 예를 참고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뜻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적어도 선거비용 문제에 관한한 미국의 경험은 부정적인 면이 많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미국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법으로 정한 것은 1974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실명제」에도 불구하고 「테이블 밑으로 건네주는 돈」(Under the table money:즉 검은돈)이 적지 않았다.

○74년 개혁에 폐해 속출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위해 1974년에 미국의회는 대통령선거의 비용을 부분적으로나마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는 개혁을 단행했으나 국회의원선거는 자금출처에 따라 제한하는 법을 채택했다. 구체적으로 74년의 정치자금개혁 입법에 의하면 미국 시민은 특정후보의 선거비용을 위해 1천달러까지 성금할 수 있고 소위 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PAC)라는 단체는 5천달러까지 지원할 수 있으며 후보자는 선거후 일정기간내에 자금의 출처와 사용목적을 상세하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후보에게 줄 수 있는 돈의 액수도 제한되어 이상적인 제도같이 보인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개인이 특정후보의 후원회를 통해 1천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그 두배까지 내놓을 수 있으므로 2천만원까지 건네줄 수 있는데 미국은 1천달러,즉 8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어 매우 대조적이다.

그러나 74년의 개혁 결과는 개혁이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정치자금을 공급할 필요가 있는 개인이나 기업체들은 74년의 개혁입법을 자금지원에 대한 제한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였다.

개인이 특정후보에게 줄 수 있는 돈은 1천달러로 제한되어 있지만,그런 돈이 저절로 모여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발벗고 나서서 모금책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런 역할은 로비이스트들이 하게 된다. 따라서 로비이스트는 특정 국회의원에 접근하기 위해서 정치자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모금파티를 개최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법차명으로 모금해주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무시못할 돈의 위력

「정치행동위원회」는 명칭은 그럴듯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체,노조단체,직능협회 등이 정치인들에게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일종의 가공단체라고 할수 있다. 원래는 1940년대에 미국 노조가 정치활동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74년에는 기업,노조,협회 등이 만들어 놓은 6백8개의 팩(PAC)이 있었다. 그런데 74년의 개혁입법으로 팩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1987년에는 그 수가 4천1백57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팩을 통해서 국회의원후보들에게 전달된 돈의 액수도 74년에는 8백50만달러였으나 86년에는 1억3천2백20만달러로 껑충뛰었다. 물론 팩이 후보 1인에게 줄수 있는 돈은 5천달러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특정기업체가 팩을 하나이상 만들수도 있고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여러 팩들이 특정후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법이 정한 제한을 벗어나고 있다.

그러면 미국정치에 있어서 돈의 위력은 어느 정도인가?

이 문제에 대한 명백한 답은 없다. 왜냐하면 국회의원의 입법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돈만이 아니라 선거구민의 성향,행정부와의 관계,이익단체들간의 균형 등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의 힘을 무시할수 없는것만은 틀림없다. 예를 들면 1985년 하원 국방세출 소위에서 F16 전투기와 F20을 놓고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하는 투표가 있었을때 한 민주당 국회의원은 투표를 하루 연기할것을 제안하면서 자신의 보좌관에게 투표하기 전에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와 노스럽사로부터 누가 더 많은 정치자금을 낼 것인가 경매(Bidding)를 부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1989년에 상원 민주당측에서는 팩의 정치자금조달을 제한하고 국회의원 선거비용을 국고에서 보조하는 개혁을 시도했으나 한 공화당의원의 필리버스터(Filibuster)로 실패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미국경험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개혁은 의도와 결과가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도덕은 의도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 따라서 정치개혁을 계획할때는 개혁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영국 선거제도 적절

둘째로 제도는 인간의 특정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은 실명제에도 불구하고 정경유착,범죄조직,검은돈 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완벽의 추구는 역효과를 초래할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정치자금문제에 대해서는 출처의 투명성도 중요하지만 정치에 있어서의 돈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미국보다 영국의 선거제도를 참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믿는다.<사회과학원장·전 주미대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