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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넘겼지만 불안심리 여전/실명제 보름… 금융권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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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넘겼지만 불안심리 여전/실명제 보름… 금융권 분위기

입력
1993.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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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자금난·물가 낙관 불허/채권시장 휘청­부동산 동면/단자는 충격벗고 정상화… 은행도 경영혁신 박차실명제 실시이후 보름동안(12∼26일) 우리 경제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실명제 충격」에서 탈피,1차 고비는 일단 넘긴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기업자금난이 가시화되고 경기부진에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일고 있어 현재로는 실명제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태다. 은행권과 주식시장은 대체로 순조롭게 실명제에 적응하고 있는 반면 채권시장과 사채시장은 휘청대고 있다. 또 우려하던 부동산 등 실물에 대한 투기는 아직까지는 일지 않고 있으나 여러가지 심심찮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증권시장은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주식시장은 당초 예상과 정반대로 실명제 충격에서 빠른 속도로 회복한 반면 채권시장은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특히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가 실명제 실시 직후인 13일과 14일 사상 최대폭으로 급락한뒤 바로 급등,1주일만에 실명제 직전수준(7백25)을 넘어섰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실명제 충격에서 벗어났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른 상태다. 이번주들어 주가가 연 4일째 하락,26일에는 종합주가지수 7백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앞으로 주식시장은 상장기업 대주주의 위장분산지분 등 엄청난 가·차명계좌 물량(시가총액기준으로 25조원 이상 추정)과 정부의 증시부양책(실명제 실시직후 검토했으나 시장 호조로 유보 또는 취소된 상태)의 강도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채권시장은 거래가 급감한 가운데 금리까지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들은 실명제 실시직후 나타났던 급격한 예금감소와 인출증가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추석과 실명전환기간 마감을 전후해 큰손들의 움직임이 수면위로 부상할 것이 예상돼 여전히 불안한 표정.

실명제 이후 25일까지 현금통화가 작년 총증가액의 두배가 넘는 1조1천3백억원이 풀렸고 총통화증가율도 당초 목표선을 웃도는 20%대에 육박하고 있지만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고 개인금고안에 쌓여있는 상태다. 실세금리는 오히려 1·26 금리인하조치 이전수준으로 치솟고 있어 하반기 자금시장 및 소비자물가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산집계가 가능한 26개 국내 은행과 51개 외국은행 지점들에 개설된 1백만7천6백여개(1조1천4백22억원)의 가명계좌중 실명전환 계좌수는 11만2천6백여개(3천43억원)로 11.2%의 실명전환율(금액기준 26.6%)을 기록하고 있어 9월말∼10월초 가·차명계좌의 실명전환을 둘러싼 파란을 예고.

은행들은 특히 실명제 실시로 CD 시장과 저축성예금 유치가 어려워지고 꺾기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일부 큰손 자금에 의존했던 자금수급전략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상품개발과 금리경쟁력 강화,경영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

○…금융기관을 빠져나간 뭉칫돈들이 몰려들어 지가폭등과 투기열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부동산시장은 정부의 토지거래허가제 확대와 자금출처 조사 강화 등 고단위 투기억제 시책에 따라 사실상 「동면」 상태.

한편 금값도 예상과 달리 무자료 밀수금 공급위축에 따른 유통구조 정상화로 1돈쭝 도매가격이 실명제 이전보다 불과 1천원 오른 4만2천원선을 유지.

○…단자업계는 동아투금과 항도투금의 전산조작 사건이 잇달아 터지는 바람에 실명제 실시의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 특히 동아투금의 경우 실명제 실시이후 첫 위반사례라는 점에서 파문이 컸다. 결국 양도성예금증서(CD) 취급업무가 3개월간 정지되고 사장 등 임직원 7명이 검찰에 고발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정부 고위당국자의 「인가취소 검토」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때 예금인출 사태를 빚기도 했었다.

실명제 실시직후에는 여·수신 모두 거의 정체상태였으나 현재는 예금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어음할인 및 중개를 통한 기업 단기대출과 금융기관간 자금 중개기능도 실명제 실시전과 별다른 차이없이 되살아나고 있다.

○…사채시장은 실명제 실시직후 거래가 완전 두절돼 72년 「8·3 사채동결조치」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으나 1주일도 채 안돼 부분적으로 어음할인이 재개되는 등 끈질긴 생명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할인금리는 A급 어음의 경우 종전보다 최고 월 0.8%(연 9.6%) 포인트 이상 높은 월 2.0%(연 24%)까지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어음할인을 요청해올 경우 현금 대신 만기가 임박한 어음으로 맞교환해주는 「어음박치기」개 새 사채거래 수법으로 등장했다.

○…실명제 실시이후 매일 중소기업 동향을 파악해오고 있는 중소기업 관련기관들은 예상보다 중소기업의 충격이 덜한 것으로 진단하면서도 보름동안 서울지역 일일 부도업체수가 4개에서 38개까지 오르내리고 있어 아직 속단할 수 없다는 신중한 반응. 중진공과 기협중앙회에 26일까지 접수된 중소기업 애로사항은 사채시장 위축에 따른 자금애로와 정부의 긴급경영 안정자금 이용 어려움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김경철·김상철·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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