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무난하게 치러졌다. 시험문제들이 평이한 탓 때문인지 시험 뒤끝이 유난히 조용한 것을 보면서 정말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시험전까지만해도 많은 수험생들과 일선교사들마저 수학능력시험의 개념과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해 쩔쩔 매었다.
통합교과적이고 탈교과적으로 사고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이 과연 학력고사때의 문제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인지 알지못해 혼란스럽고 불안해 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시험을 치르고 난 절대다수 수험생들이 「별게 아니었다」는 듯이 안도했다는 것을 보면 1차 시험의 출제와 관리는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교육학자들이 내리는 평가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제도의 시안마련때 깊이 간여했던 한 교육학 교수는 수학능력시험의 개념과 성격은 국립교육평가원에서 시행한 7차례 실험평가 출제과정에서 막연하게는 가시화됐지만 1차 시험 출제에서도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못해 「모호하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한다.
수험생들의 충격과 혼란을 줄여주는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고등사고능력을 측정하기에는 문항개발 자체가 너무 초보적인 단계여서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측정하기에는 미흡했다는 평이다. 시험뒤의 「출제 잘·잘못」에 대한 논란이 거의 없다는 것부터가 시험의 개념과 성격이 모호해 시비를 할 만큼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리·탐구영역」은 어떤 내용을 취급하는 것인지,고교교육 과정의 교과목과 상관관계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이번 시험 출제로 판단해보면 수리=수학,탐구=사회과목과 과학과목으로 교과서에 충실한 출제였다. 문제의 성격을 보면 학력고사 문제를 약간 차원높게 한 정도이지 수리와 탐구능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못됐다는 것이다.
결국 수학·사회·과학교과목내의 출제였을 뿐이지 탈교과적이고 통합교과적이란 개념과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도 수학Ⅰ만 배우는 인문계열과 수학Ⅱ까지 배우는 자연계열을 구분없이 같은 문제로 시험치게함으로써 인문계열 수험생들을 불리하게 하는 시험제도의 모순까지 드러내 보였다. 그런 식의 출제였다면 계열을 분리해 시험을 치게 했어야 옳았다.
난이도가 다른 문제로 치르게 되는 2차례 시험점수를 1차와 동등화해 좋은 점수를 대학에 제출케 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고 결과적으로 2차례 시험을 수험생들에게 강요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려면 장기 대책으로는 수학능력시험 영역을 언어능력과 수리능력만을 측정하는 것으로 축소시키고 출제도 교과서에만 충실하지 말고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원리에 충실한 문제를 내야 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대부분의 대학들이 고교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상황하에서는 단기대책으로는 인문계열의 득점불리를 보전해줄 수 있는 방안이 대학별로 마련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리영역 출제를 자연계와 인문계로 분리해서 해야 한다. 대학별 방안은 동일계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도 가능하고,내신성적의 해당과목 가점이나 면접·구술때 동일계열 지원자에게 점수는 더주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이번 대학 전형부터는 수험생들이 수학능력시험 점수표를 받아본후 원서를 내는 「선 시험·후 지원제」가 되살아나게 된다. 대학의 서열화가 심화되고 소위 눈치지원으로 접수창구가 마지막날에 북새통을 이루게 될 것은 종전의 경험으로 미뤄 불을 보듯 뻔하다.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절대다수 대학에서는 동점자사태로 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교육부와 교육평가원은 노출된 문제점들에 대해 개선하고 보완할 장·단기 대책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1차 시험을 무난히 치렀다해서 자만할 일이 아니다. 수학능력시험을 입시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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