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금강산 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의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뒤 저들이 댐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 단가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건설로 인해 금강군 등이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톤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바 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 감축을 제의했는데 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 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장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 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 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 공산집단이 방송 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다.
다시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톤 정도 가물막이공사를 끝냈을 때의 위협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톤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톤을 합쳐 12.4억톤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톤과 화천댐 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톤을 합친 12.9억톤으로써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 5만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 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한 것이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톤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안에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톤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톤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 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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