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아침 민자당은 아주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논평을 하나 내놓았다. 전날 국회에서 있었던 헌법재판소의 「90년 국회 날치기 통과사건」 현장검증과 관련된 것이다. 우선 논평을 냈다는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 『사법기관의 일에는 간여하지 않는다』며 검찰의 수사에 관해서도 논평을 하지 않아왔던 종전까지의 자세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용이 궁금해서 들여다볼라치면 아연실색할 대목의 연속이다.『24일 헌법재판소장 이하 몇몇 간부가…』로 시작되는 논평 첫머리부터 보자. 대법관과 같은 대우를 받는 「헌법재판관」을 「몇몇 간부」라고 한 것은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를 의도적으로 비하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논평은 또 『헌법재판소가 조사 운운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이 대목도 헌법재판소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이 담긴 표현으로 들렸다.
감정을 억제치 못한 것은 그렇다쳐도 사실관계나 관계법률과 동떨어진 말이 공당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논평에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준수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국회의 의결과정을 헌법재판소가 문제삼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삼아 헌법소원을 청구한 쪽은 당시 야당이었다. 민자당은 이를 잊은 모양이다. 고소장을 접수받고 수사에 착수한 검찰에 대해서 『검찰이 문제를 삼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뿐이 아니다.
『국회의 의결절차가 과연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는데 이는 법전을 한번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의문거리도 안되는 의문」이다. 공권력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됐다면 국회는 물론 대통령의 행위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논평은 또 『국회의 의결절차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관계기관에 검토케 하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우리나라에 헌법재판소 말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관계기관」이 어디인지 묻고 싶다. 대법원 법무부 검찰 법제처 변호사회 등 어느 곳에 검토케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아가 『국회를 조사하겠다는 헌법재판소 간부들의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지어버린 것은 도저히 집권 여당의 논평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위가 중요하다면 역시 헌법기관이자 대법원과 동등한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권위도 중요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