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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정국의 과제/이성준(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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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정국의 과제/이성준(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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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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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을은 정치권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9월10일부터는 1백일간의 법정회기가 보장된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곧바로 국정감사도 실시된다. 통상적으로 이를 「가을정국」이라고 부른다.올해의 가을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문민시대 들어 처음 맞는 가을정국이다. 뿐만 아니라 개혁의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국정감사는 개혁과 사정이 파헤쳐 놓은 우리 사회의 모순구조와 부패의 먹이사슬을 도려내고 제도적 시정을 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 국회는 국정감사 기간중 막강한 위력을 지닌 국정조사권을 자동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이같은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정확히 5년전인 88년 가을­. 17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가 그해의 가을정국을 어떤 상황으로 몰고 갔는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촉발된 과거 청산의 물결은 「혁명적 상황」을 초래했었다. 급기야는 전직 대통령이 절해고도나 다름없는 백담사로 유배를 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과거의 세도가들이 줄줄이 국회에 나와 과거사를 증언해야만 했다.

새정부는 그동안 줄기차게 개혁작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개혁이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것은 공직자 재산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한 공직자윤리법 개정 정도이다.

개혁의 견인차가 되어야 할 정치분야의 경우만해도 정치자금법,정당법,각종 선거법 등이 가을정국을 기다리고 있다. 지방자치제 관련법 등 고쳐야할 주요법안 수십건 역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매듭지어져야 한다.

국회에서 승인을 얻은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한 대통령의 긴급명령도 보완대책이나 대체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장치가 강구돼야 함은 물론이다.

율곡사업,12·12사태,평화의 댐 등에 대한 국정조사권은 발동돼있으나 조사계획서 작성문제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회차원의 조사여부도 일단락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대중씨 납치사건도 과거사 정리차원에서 걸러져야 할 사안이다. 여기에다 여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할 예산개혁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성패가 판가름난다.

문제는 과연 정치권의 이처럼 산적한 「가을정국의 과제」들을 소화해낼 내부역량을 지니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정치권은 개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입장이지만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돼버렸다. 청와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파고에 비례해 무력화돼왔던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권은 지난봄 재산공개의 파문에 휩쓸려 표류하다시피 해왔다.개혁과 사정의 파상공세속에 파묻힌 나머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깨끗한 정치와 선거문화 개혁을 다짐해놓고서도 잇단 보선에서 구태를 재현시켜 스스로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명주·양양과 대구 동을 보선의 타락과 과열상은 정치권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뿐인가. 정치권은 9월11일 마감된 재산공개가 가져올 「제2의 재산공개 파문」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허를 찌르듯 전격단행된 금융실명제 실시는 정치권에 대해 새로운 정치문화 조성을 강요하고 있다.

가뜩이나 말랐던 의원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자칫하면 가을정국에서 기지개를 펴보기도 전에 정치권 전체가 또 한차례 위축될 수도 있다.

중차대한 가을정국은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정치권은 개혁성패의 시금석이 될 가을정국을 어떻게 맞아야만 하는가.

우선 자기 자신부터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는 개혁을 해야 한다. 정치권이 자기개혁을 성공시킬지 여부는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국가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이 국가 상층구조의 핵을 이루고 있다는 일반론에서 뿐만 아니다. 개혁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느냐 여부가 바로 정치권의 기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자기 개혁을 하지 못한 정치권이 정치력을 복원할리 없다. 정치력을 복원하지 못한 정치권이 개혁을 선도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개혁추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정치권이 자기개혁을 게을리할 경우 어떤 심판을 받는가는 일본 자민당의 몰락이 좋은 교훈이다. 일본 자민당은 세계적 추세인 개혁의 대세를 외면했다. 국민의 빗발치는 개혁요구를 소홀히 하다가 끝내 38년 지배체제의 붕괴를 맞았다. 우리 정치권도 자기개혁에 미흡할 경우 「외압에 의한 질서개편」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있다.

가을정국은 국가차원의 개혁과 정치권 개혁의 성패를 판가름짓는 거대한 실험장이다.

분명한 것은 이 실험이 반드시 성공으로 끝나야 한다. 이 실험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개혁은 멋 훗날의 일이 될는지도 모른다.<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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