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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마당만 쓸어봤자…(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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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마당만 쓸어봤자…(장명수칼럼)

입력
1993.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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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에 사는 나의 친구가 옆집 주부에게 느꼈던 분노를 털어 놓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루고루 타락하고 공동체의식이 희박한지를 새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의 집은 1층인데,위층에서 대대적인 수리를 시작하자 자연히 1층 앞마당에 공사쓰레기가 쌓이고,베란다가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게 됐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옆집 주부가 공사하는 사람들에게 수박과 주스를 날라다주는 것을 보았고,옆집 마당은 공사쓰레기가 말끔히 치워져 깨끗해진 것을 발견했다.그는 인부들에게 찾아가 『우리 마당에도 공사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빨리 빨리 치워주고,버릴 때도 너무 먼지가 안나게 조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인부들은 『같은 주민들끼리 공사편의로 봐줘야지,뭘 그렇게 잔소리를 합니까』 『맨입으로 부탁하면 됩니까. 옆집 사모님은 매일 한턱을 내는데…』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때야 그는 왜 옆집 마당만 깨끗한지를 알게 되었다. 공사를 하는 위층의 주인은 나타나지도 않고,옆집 주부가 수박을 날라다 주는 것이 잠시 이상했던 그는 그 수박이 「뇌물」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뒤에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집 앞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그 뇌물은 단순한 것 같지만,『옆집 마당에 버리는 것까지는 모르겠다』 『쓰레기를 꼭 버려야 한다면 내집 마당이 아닌 옆집 마당에 버려달라』는 청탁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으니 내 친구로서는 배신감을 느낀 것이 당연하다.

내 친구의 옆집에 사는 그 젊은 주부가 「공동대책」을 의논하는 대신 재빨리 독자적인 뇌물을 써서 자기 앞마당을 지킨 영악스러움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 아이를 잘 봐달라고 교사들에게 주는 봉투도 같은 맥락이다. 내 아이를 특별히 잘 봐달라는 부탁을 뒤집으면 다른 아이들과 차별대우를 해달라는 뜻이 된다. 중산층 이상이 모여사는 지역의 파출부 일당이 다른 동네보다 빨리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2만원을 주면 나는 2만5천원을 주고,남들이 2만5천원을 주면 3만원을 줘서 더 열심히 일하도록 붙들어 두겠다는 주부들이 계속 파출부 일당을 올리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타락시키고,편법이 판을 치게 되고,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수박을 먹여서 내 마당만 깨끗이 지키겠다는 이기주의는 돌고 돌아서 자기가 대가를 치르는 날이 곧 오게 된다. 공적인 이득과 사적인 이득이 상충될 때 사적인 이득을 움켜잡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다.

새정부 출범이후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개혁은 국민의 의식개혁없이 성공하기 어렵다. 우리는 사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욕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춰봐야 한다. 수박을 나르던 발길을 멈추고 과연 이사회가 깨끗해지지 않은채 내 마당만 깨끗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너무 영악스런 사람들이 많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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