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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경제실험장(한·중수교 1년/중국의 오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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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경제실험장(한·중수교 1년/중국의 오늘:1)

입력
199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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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부작용 치유” 거센 개혁바람/본보 현지 특별취재오는 24일로 한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지 1년이 된다. 경제협력을 골간으로 이루어진 양국의 새로운 관계는 현재 어느 위치에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발전돼 나갈 것인가. 한국일보는 특별 제휴관계에 있는 중국 인민일보의 협력으로 취재팀을 파견,빠른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개방 중국의 현주소와 양국관계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취재단은 이번 중국 방문기간에 북경이나 상해 등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둘러본 것은 물론 국내 취재진으로는 처음으로 부패척결에 나선 중국 감찰부를 찾아 사회주의의 땅 중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개혁의 현장을 소상하게 파악했다. 특히 올해 탄생 1백주년이 되는 모택동의 고향 호남성 소산에서 중국 사회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조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중국 내륙의 농촌현장에서는 경제발전에 따라 나타나기 시작한 농민의 이농현상을 확인했다.

중국 중남부에 있는 호남성은 남북한을 합한 우리나라와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인구 6천2백만명에 면적은 21만㎢,이중 70%는 산이다. 음식도 맵고 짭짤한 간이 배어있는 우리 것과 비슷하다. 논과 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우리나라의 시골과 다름없다. 비행기로 서울에서 3시간,북경에서 다시 남쪽으로 2시간이나 달려 온 곳이지만 전혀 멀리 왔다는 느낌이 아니다.

아직 개방되지 않은 내륙의 호남성이 더욱 가깝게 느껴진 것은 현지 곳곳에서 눈에 띈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 때문이다. 호텔로비의 상품 진열대에 한글상표가 선명한 해태껌이 있고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30여대의 승용차중 2대가 한국산이었다.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에서 모택동 생가가 있는 소산까지의 1백여㎞ 비포장 길에도 호남성 번호판을 단 현대의 쏘나타가 달리고 있었다.

『한중 양국관계는 수교이후 크게 발전됐습니다. 양국교역이 수교이후 2배 이상 늘었고 한국기업의 중국투자도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중국 대외무역 경제합작부 호국재 부사장은 양국 수교가 경협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수교이후 크게 달라진 것은 경제뿐만이 아니다. 이념의 벽을 허문 지난해 8월이후 양국관계는 정치 외교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김영삼대통령의 개혁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중국 감찰부 고위관계자들이 북경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고 있는 양국 정치인의 심도있는 만남이 자연스러워졌으며,중국의 침술을 배우려는 한국 학생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양국관계는 그러나 최근들어 불어닥치고 있는 중국 내부의 개혁바람과 함께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정부가 14년동안의 개방정책으로 야기된 각종 문제점들을 치유하는 작업에 대대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을 찾은 한국의 기업인이나 취재진에게 적극 진출해줄 것을 촉구하던 중국의 목소리는 현재 희미해졌다.

대신 중국의 대외무역 경제합작부나 국가경제체제 개혁위원회의 고위 관계자들은 새롭게 시도하는 중국의 개혁방향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중국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문제점이란 과열경기와 이에따른 물가불안,자금유통의 왜곡,개방지역과 농촌과의 빈부차 등이다.

중국 관계자들은 이를 「2고,2긴,2난」으로 요약했다. 원자재와 소비자물가가 상승하고,에너지부족과 수송난을 겪고 있으며 사회간접시설 미비 및 금융체계의 혼란 등을 일컫는 말이다.

7천만명 이상의 절대 빈곤층이 있는 중국이 현재 엄청난 과열경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북경시내에서는 30만달러(약 2억4천만원)에 달하는 고급빌라가 짓기 무섭게 팔리고 있고,주식으로 한목을 잡으려는 중국인은 북경 상해 등지에서 1주일에 5만명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다.

◎투기등 경제불안 사회주의 강화로 “조이기”

최고급 상품을 파는 백화점이 중국인들로 붐비고 내륙지방에서도 외제차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또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농민의 수가 1천만명에 달하고 있는 빈곤을 못이긴 농민들의 소요도 심각한 상태다. 중국정부는 이대로 개방만을 추구할 경우 경제불안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기반이 위태롭다고 판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중국 경제체제 개혁위원회의 강춘택부사장은 『생산과 판매의 구조자체를 전면 개혁하고 해안지방에만 집중했던 개방을 농촌으로 돌려 9억 농민을 자주경제의 주체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7월부터 금융당국은 굉관조공이라는 이름의 거시조절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체호라는 개인기업을 대대적으로 허가하고 국영기업을 점차 민영화하며 비제조업으로 빠져나간 돈을 회수하는 작업이다. 농촌 곳곳에는 우리나라의 농공단지와 같은 향진기업을 세워 농민의 소득증대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전체가 거대한 신경제 실험장이라는 느낌이다. 체제개혁위의 강 부사장은 이를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로 정의했다. 『시장경제는 곧 자본주의라고 말하나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회주의의 틀을 유지한채 시장경제를 도입해 고르게 잘사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실험이다. 상해무역관의 이준용관장은 이를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옛 소련과 같은체제 붕괴다. 따라서 체제는 사회주의로 유지하고 경제는 지속적인 개방으로 실현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중국정부가 올림픽 유치를 적극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는 12월 고 모택동주석의 탄생 1백주년을 맞는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중국정부의 이같은 의지는 확연하다. 올림픽 유치는 중국의 대외개방 의지를 밝히는 상징이고 모 주석의 기념사업은 사회주의체제의 강화로 풀이된다.

모 주석 기념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문휘항 모택동 사상연구회 부회장은 『모 주석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등소평의 개방과 일치하는 사업』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했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에 기초를 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눈에 비치는 중국은 현재 모든 것이 혼재된 상태다.

수백만원 돈을 쥐고 투자할 곳을 찾는 부유층과 절대빈곤층이 한곳에 있고,사회주의의 강화와 시장개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을 대하는 중국측의 반응도 복잡하다. 중국 당국자들은 남북한 관계나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발언하기를 꺼리고,낙후된 지역은 한국기업의 투자를 바라고 있는 반면 개방된 도시는 한국기업이 와도 그만 안와도 그만이라는 반응이다.

수교이후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는 분명 가까워졌으나 새로운 접근과 관계설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특히 그 책임은 우리 정부와 기업쪽에 있다. 도도한 개방과 확고한 체제구축을 추진중인 중국에 대해 우리 기업들은 아직도 환상과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채 한국에 돌아가 중국과 엄청난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선전하는 한국기업인이 있고 중국인 노무자와 갈등을 일으켜 철수하는 한국기업도 있다』는 경무부 호 부사장의 말이나 『한국이 네마리 용이라던 시대는 지났다. 중국은 이제 한국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함께 네마리 호랑이도 분류하고 있다』는 포동 경제개발구 관계자의 말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특별취재단

▲박찬식부국장(단장)

▲유동희 북경특파원

▲이종재 경제부기자

▲고태성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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