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기업문화/위장지분·가지급금등 철퇴/우량기업 육성 제도적 지원실명제 실시이후 기업은 살찌고 기업인(재벌)은 매우 곤혹스러워지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 문화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된 「기업이 망해도 기업인은 살아남는」 기현상은 크게 줄어들게 확실하다. 또 세계에서 손꼽히는 갑부는 있어도 대기업은 보기드문 경제현실도 대폭 개선돼 세계적 우량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된 셈이다.
실명제 실시이후 국내 유수의 재벌들은 거의 예외없이 위장분산 주식과 비자금 처리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12 긴급명령」은 향후 2개월내에 비실명 자산 거래자가 그 명의를 실명으로 전환함에 따라 공정거래법 등 기존 법률의 규정을 위반하는 결과가 되더라도 1년내에 그 위반사항을 시정하면 처벌치 아니한다(15조)는 경과규정을 두고 있다. 이는 재벌그룹의 오너 등 대주주가 가명이나 차명계좌에 위장분산해놓은 주식지분을 실명으로 전환하면서 공정거래법상 제한규정을 어겨도 1년안에만 처분하면 묵인한다는 의미다.
현재 재계나 증권가에서는 전체 위장분산 주식의 규모가 줄잡아 6조∼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장분산 주식의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는 해당기업의 자금담당 임원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난 91년 주력업체제도 도입당시 D산업은 여신규제를 받지 않는 주식분산 우량업체로 지정받으려다 뒤늦게 엉뚱한 위장지분이 노출돼 수십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위장분산 주식들이 실제 소유자의 실명으로 노출될 경우 재벌기업들의 공정거래법 위반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게 재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공정거래법은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기업에 대한 출차총액이 순자산의 40%를 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또 같은 그룹내 A계열사와 B계열사간에 서로 출자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가공자본」을 만드는 상호출자는 일절 금지하고 있다.
지난 4월 현재 국내 30대 재벌의 출자총액은 평균 28.0%로,대우 한진 진로 등 7개 그룹을 제외하고 모두 법정한도인 40% 이하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상호출자 지분이 남아있는 그룹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재벌오너나 친인척 계열기업이 실명으로 소유중인 지분만 따진 것이다. 만약 위장분산된 주식의 진짜 주인을 확인할 경우에는 상황은 달라진다.
『실명제 실시이후 경제력 집중완화를 목표로 한 공정거래법의 실효성이 지금보다 현저히 강화될 것』이라는 공정거래위 관계자의 지적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공정위는 위장주식 지분이 노출되면 현재 30대 재벌이 평균 20개꼴로 거느린 계열기업수도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함께 실명제는 비자금 마련이나 임원 가지급금,대여금 등 기업회계상 부당한 자금유출을 효율적으로 막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은 상당수가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통해 상품가격을 낮추거나 높이는 편법을 써 비자금을 마련하곤 했다.
또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는 업체도 재벌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그룹간 내부거래를 통한 특혜에 힘입어 살아남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기업 오너를 비롯한 임원들이 가지급 형식으로 돈을 빼돌려 부동산투기나 재테크에 뛰어드는 관행은 알려진 비밀이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인들은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 대해 가명또는 차명계좌에 든 자기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챙기는 악성 사채놀이까지 한다는 소문도 있다. 자금흐름이 완벽히 노출되는 실명제 도입이후 이같은 「소경 제닭 잡아먹기」식 기업경영과 자금운용은 당연히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실명제가 경제력 집중억제,개별기업의 경쟁력 제고뿐 아니라 위장지분의 처분을 통해 소유분산의 촉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효력을 나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유석기기자>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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