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무너지면 「깡통계좌」 파문 재현우려금융실명제의 전격 시행으로 금융기관들이 말못할 고민에 빠져있다.
은행과 증권·단자사 등 금융기관들은 실명제 실시로 국내 금융산업발전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돼온 가명거래 관행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해 한결같이 환영한다는 표정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그동안 「큰손」과 직·간접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종 부조리한 거래관행에 젖어왔던 이들로서는 「검은돈 척결」을 목표로 한 실명제의 불똥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은행점포에서는 실명제 실시를 계기로 노출된 「꺾기 후유증」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과거 은행들이 대형융자 희망고객에게 대출대가로 최고 수억원대의 정기예금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를 「꺾기」로 판매해온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관행상 「꺾기」는 본인 아닌 은행직원 명의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2개월안에 예금주 자신의 이름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 경우 비실명예금에 대한 고액의 세금추징과 국세청 자금조사는 물론,은행직원들은 과거금융비리에 따른 문책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상당수 은행 일선점포에는 이같은 꺾기처리를 놓고 은행측과 대출고객간에 「원만한 해결책」을 찾지못해 상당한 마찰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명계좌는 각 금융기관이 안고있는 공통된 고민거리. 지금까지 금융기관들은 수신고 증대를 위해 점포마다 수백건의 「차명리스트」를 만들어 왔으며 이중 대부분은 거래가 중단된 휴면계좌나 무잔액 계좌로 예금주의 동의없이 명의를 사용한 도명계좌들이다. 차명계좌는 사실상 가명임에도 실명행세를 할 수 있어 일반예금를 할 수 있어 일반예금의 경우 64.5%의 비실명계좌 이자소득세율 대신 21.5%의 정상세율이 적용되며 여러개의 차명계좌로 분산예금할 경우 1인1계좌로 한정된 5% 우대세율의 저축성예금에도 얼마든지 가입할 수 있다.
금융기관들은 과거 캠페인성저축 모집과정에서 「큰손」 고객은 물론 서민용 증권저축·근로자장기저축·세금우대 채권저축 등 소액상품에도 엄청난 차명계좌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로 차명계좌에도 64.5%의 비실명세율이 적용되고 자금규모가 5천만원 이상일 경우 국세청의 자금조사를 받게 됨에 따라 늘어난 세금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를 놓고 고객과 금융기관간의 마찰을 불가피한 실정이며 법정소송으로까지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한편 증권사들은 실명제 실시에 따른 증시폭락으로 90년의 「깡통계좌」 파문이 또 다시 재현될지도 모른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증권사 신용거래의 경우 지금까지 고객들에게 예탁금의 2백%까지를 주식투자 자금으로 대출해주었기 때문에 증시가 계속 바닥세를 맴돌 경우 환수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현재 증권가에서는 16일 종합주가지수가 반등하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으나 6백50선이 무너질 경우 잔고가 바닥난 「깡통계좌」가 무더기로 발생할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90년 당시와 같은 고객들의 대거이탈과 집단항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한 은행지점장은 『지나친 수신고경쟁 때문에 자초한 일이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면서도 『진정한 건전금융질서 확립을 위한 것이라면 한번쯤은 거쳐야 할 과정이 아니겠느냐』고 고충을 토로했다.<이성철기자>이성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