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합국 전문 탐지」 파문조짐/첩보원들이 전신내용 가로채/종전·전후질서 편성등에 이용미국은 2차대전 종전 직전 연합국들의 비밀 외교전문들을 중간에서 가로채 대전의 마무리는 물론 전후 국제질서에 대비하는데 이용했던 것으로 15일 공개된 미 정부의 한 문서에서 밝혀졌다. 특히 이 문서는 지난주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던 것처럼 일본 군부가 히로시마 원폭투하 전부터 항복을 고려하고 있었고 미국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포함하고 있어 향후 상당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마법의 가로채기」(Magic Intercepts)라고 불리는 8백여 페이지 분량의 이 문서는 당시 미국첩보원들이 우방국들의 전신내용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무선신호를 모니터한 뒤 암호를 해독하는 방식으로 작성된 것이다.
미국을 비롯,소련·영국·프랑스 등 연합국들의 활동상황을 시기순으로 정리한 이 문서는 또 미국의 전쟁정책에 대한 우방국의 불만 등 연합국측 내부의 불협화음과 전후 유럽 및 중동의 분할을 둘러싼 각국의 암투상황 등 대전이후 세계지도를 바꿀뻔 했던 역사의 숨겨진 단초들을 담고 있다.
이 문서에는 미국이 인도차이나반도를 점령하려는 프랑스에 대한 원조를 거부하자 노골적으로 미국에 불만을 표명한 드골 장군의 개인 성명도 들어있다. 프랑스는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사후에 소련에 대한 반대입장을 공식표명하고서야 이 지역의 우선권을 보장받았다.
소련과 영국 정부의 공식성명은 보관과정에서 소실돼 직접적인 근거는 없으나 여타 우방국 외교관들의 언명을 통해 이와 유사한 움직임들이 엄존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미국은 소련의 팽창정책에 대한 우방들의 여론을 수집하면서 여러가지 경로로 유럽과 아시아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소련을 의식,상당한 압박을 가했음을 이 문서는 보여준다.
미국은 공산소련에 대한 붕쇄정책을 추진하면서 소련의 움직임과 우방의 반응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유엔창설을 위한 샌프란시스코회담에서 존 록펠러 미 국무차관보와 만난 뒤 『미국은 과거 나치즘에 대해 얘기하듯 공산주의를 비난하면서 국제적인 대응을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본국에 보고했고 프랑스는 『러시아 정부가 반소동맹 결성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타전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조약 당시부터 후일 냉전시대를 예비하는 미소간의 물밑대결과 양진영으로의 편가르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원폭피해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미국의 일 항복사전탐지설은 외교메시지의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독일의 한 외교관은 독일이 항복한지 3일 후인 45년 5월5일 일본의 고위 해군관리와 회담을 가진 뒤 『희망이없다는 것이 분명해짐에 따라 일본군의 상당수가 아무리 조건이 까다롭더라도 미국의 항복요구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베를린에 보고했다. 다른 연합국외교관들도 조만간 일본이 항복할 것이라고 본국정부에 보고했고 미국은 이같은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오랫동안 역사속에 묻혀 있었던 이 문서가 빛을 보게 된 것은 한 개인의 끈질긴 법정투쟁 덕분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가르 알페로비츠씨는 『냉전이 끝난 마당에 50년이나 된 문서를 숨기는 일은 우스운 일』이라며 이 문서의 공개를 위해 소송을 제기,국가안보의 중대한 피해를 이유로 이를 반대해온 국가안보회의(NSC)와의 실랑이 끝에 최근 승소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후 역사의 몫으로 되돌려진 「마법의 가로채기」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이재렬기자>이재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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