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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띠 통일」/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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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띠 통일」/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3.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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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에서 임진각에 이르는 통일염원 인간띠 잇기는 그대로 장관이었다. 6만여명이 인간사슬을 꿰어 48㎞에 이른 이 행사는 우리의 통일염원이 얼마나 순수한 것인가를 남김없이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분단 극복의 과제가 얼마나 간절한 것인가도 이 길고 긴 인간띠는 마디 마디 웅변하고 있었다.그러면 남쪽의 이 애틋한 행사가 바로 통일의 상대인 북쪽에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니 북한의 평범한 시민들이 이 일을 알 길은 과연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다. 비록 「통일」이 주제였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호소한 행사일 뿐이었다.

○상대가 있는 게임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고 하는 격변상황이후 우리의 통일논의,통일을 위한 몸부림이 부쩍 달아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달아오르는 열기,고조됐던 기대는 늘 일정한 패턴으로 좌절되고 맥이 빠져 버렸다. 그리고 그 때마다 확인시켜준 것은 통일은 북한이란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것. 그들의 동의가 없는 한,그들이 변하지 않는한 아무리 뜨끈뜨끈한 남쪽의 열기도,48㎞가 아니라 4백80㎞의 띠를 이어도 그것은 한쪽만의 염원일뿐 통일이라는 현실과는 전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이다.

멀리 갈 것까지 없이 이번 대회만을 보자. 원래 주최측은 독립문에서 판문점,개성에 이르기는 61㎞에서 이 행사를 가지려 했다. 만약 성사됐더라면 그것이 내외에 주는 메시지는 컸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치의 예외도 없이 불법화된 범민족대회 개최허가를 조건으로 걸고 나왔다. 해묵은 「범민족대회 저의」가 어김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보다 앞서 9일에는 남북합의서 이행을 위한 남북 핵통제위원회를 갖자는 우리측 제의를 거부했고 그들이 지난 5월 제의했던 최고위급 특사교환만을 거듭 주장했다.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노인을 북으로 돌려보낸 우리의 「인도주의적 조치」가 바로 뒤인 3월12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되돌아왔던 일은 이제 구문이 되었다.

땅굴,무장간첩 남파,아웅산묘소 테러,KAL기 폭파 등까지 예시하라면 얼마든지 있다. 모두가 7·4 공동성명이후 소위 대화라는 간판밑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지난 4일 엑스포 전시장에서는 백두산의 천지물과 한라산 백록담물의 합수식이 있었다. 백두산에서 중국을 통해 공수해온 1백50리터의 물을 천지모형의 연못에 붓는 순간 엑스포 관계자들이 감격의 박수를 치는 장면이 신문마다 크게 실려있다.

도대체 이 행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최측은 1백8개국이 참가한 만국박람회에 유독 북한만이 불참한 것을 메우고 또 「우리의 통일의지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이 행사가 보여준 것은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당국마저 남북문제를 너무나 감상적 문제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변하리라는 조짐은 아직은 없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여건들은 수년전과 현저히 달라졌다. 따라서 통일이란 「실현불가능한 신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올 수도 있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섰다는 것이 수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의 「철저한 대비」가 강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민주적 제도,기술수준,국제경쟁력,포괄적으로 국력을 어떤 갑작스런 변화도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가장 현명하게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은 꼭 독일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공론이 되어 있다.

○감상적 접근 곤란

그래서 통일을 더이상 감상적으로 다루는 시각도 조정돼야겠고 그런 유의 행사도 줄어들어야겠다. 그것은 민간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입장이란 오히려 무엇이 통일에 관한 현실적인 준비인가를 알려주고 교육시키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어느 순간,어느 형태로 찾아올지 모를 통일이란 정부 혼자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정부가 남북문제에 관해 태도를 매우 조심스럽게 가질 필요가 있다.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핵대응을 하겠다는 것인지,경협부터 하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국민을 헷갈리게 해서는 더욱 안된다. 통일문제를 더이상 국내 정치용 카드라고 생각하는 착각이 있어서도 안되겠다. 이제 그 카드는 약효가 떨어진지 오래다.

또하나 당부할 것이 있다면 다른 어떤 정책에 앞서 통일에 관한 문제만은 철저한 공개주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개를 통해 광범한 합의의 도출이 필요하고 그것이 통일에서 오는 충격을 줄이는 첩경이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통일문제는 정부고 민간이고 그 실체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통일」위에 걸쳐있는 온갖 환상과 수사와 거품을 걷어내고 그 실체를 정직하게 봐야할 것이다. 이것은 통일에 대한 염원이 강렬할수록 더욱 필요한 일이다.<편집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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