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새면 책임” 사직서 내놓고 작업『금융기관에 좀 미안합니다. 금융실명제의 조기 정착여부는 금융기관의 일선 창구 직원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럼에도 제도의 성격상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금융실명제 전격 시행의 실무주역으로 1개월여동안 밤샘작업을 해온 재무부의 김용진 세제실장은 14일 기자와 만나 이같이 밝히고 『며칠간의 적응기간이 지나면 내주부터는 전반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금융실명제가 완벽하게 사전 노출되지 않고 도입된 탓인지 그동안의 피곤을 잊은 표정이었으나 『앞으로 가 문제』라며 긴장을 풀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사직서까지 제출해놓고 일했다던데.
▲실명제 자체가 보통사안이 아니어서 7월초 「일이 잘못되면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홍재형장관께 사직서를 한장 썼다. 나뿐만이 아니라 준비작업에 참여한 직원 3명도 내게 사직서를 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고비가 있었는가.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대통령 말씀대로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야 하는데 어디선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마지막 이틀은 「일각이 여삼추」였다.
주요 사안이나 방향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했나.
▲이경식부총리 홍 장관 등과 자유토론을 수시로 했다. 때로는 장시간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채권 등 무기명 자산을 현금상환받을 때 국세청에 통보하는 기준을 놓고 서로 양보하지 않는 논쟁을 하기도 했다.
7월에 허리가 아프다고 병원엘 다녔는데 자리를 비우기 위한 꾀병이었나.
▲진짜 아팠다. 산에 갔다가 좀 무리를 해 침과 물리치료를 20일 가량 받았다.
실명제 실시에 따라 세제차원에서의 보완이 이뤄지나.
▲지금 당장 보완할 것은 없다. 실명제가 정착되고 나면 기업이나 상인 등 납세자의 외형이 종전보다 더 노출될 것이다. 이 경우 장기적으로는 부가가치세와 상속·증여세의 세부담이 늘어 세율인하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 외형노출은 전산화가 돼있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시장상인이 더 심할 것이다. 이들은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지나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기간이 경과한후 실명제에 따른 세제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실명제 도입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금융시장 등의 초기 혼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무리 좋은 제도도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실명예금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로지 1%를 약간 넘는 가명거래자들이 고통받은 것인데 뭔가 바뀐다는 괜한 오해 때문에 실제보다 불안이 증폭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는 어떻게 했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앞으로도 못갈 것이다. 실명제가 일단 마무리됐으나 올 가을의 엄청난 세법 개정작업이 또 기다리고 있다.<홍선근기자>홍선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