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유치 위해 마구 만들어줘/소득세 부담 책임 공방 불보듯실명제 전면 실시를 계기로 그동안 「검은 돈」의 합법적 은신처로 이용돼온 「도명계좌」를 둘러싸고 금융기관과 「큰손 고객」간의 커다란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도명계좌는 예금주가 자신의 신분을 은폐함으로써 세무당국의 자금추적을 피할 수 있을뿐 아니라 사실상 비실명이면서도 실명행세를 통해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세금우대까지 받을 수 있어 본능적으로 노출을 기피하는 「검은 돈」의 가장 안전한 은신처로 각광받아왔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를 통해 도명계좌가 예금주의 본명으로 등록될 경우 그동안 원천징수치 못한 소득세까지 추징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놓고 금융기관과 고객예금주들간의 실랑이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도명계좌란 문자 그대로 남의 이름을 몰래 훔쳐 개설한 예금계좌. 예금주의 명의가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가명계좌와는 다르며 또 타인의 이름을 본인의 동의없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차명계좌와도 구분된다. 금융관계자들은 『현재 각 금융기관에 개설된 차명계좌의 대부분은 명의대여자를 확인할 수 없는 도명계좌로 그 수는 점포별로 최고 수천개에 이르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지금까지 큰손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 지점별로 수백여개의 「차명리스트」를 보관해왔으며 이중 상당수는 「훔친 이름」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명계좌로는 금융기관 직원들의 가족이나 친지이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잔액이 전혀 없는 빈계좌나 거래가 오랫동안 중단된 소액 휴면계좌들이다. 일부 점포들은 무잔액통장이 생기더라도 장부 자체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액의 돈을 입금,대형고객을 위한 예비용 도명계좌로 비축해왔다.
그동안 「큰손」들은 금융기관이 마련해준 도명계좌를 통해 거액의 검은 돈을 마음껏 굴려왔다. 수십개의 도명계좌에 분산입금할 경우 「1인 1계좌 예금한도 1천5백만원」의 세금우대 저축상품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가 있었다. 또 1계좌당 주식매매 최대한도가 5천만원으로 묶여 있는 증권시장에서도 여러개의 도명계좌만 갖고 있으면 수십억원의 재테크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결국 금융기관들은 고액자금을 유치키 위해 도명계좌를 만들어주고 전주들은 이를 이용,법망을 피해가며 돈을 눈덩이처럼 불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도명예금들도 10월12일까지는 실명전환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자금출처 조사 및 최고 10∼60%의 과징금을 내야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도명계좌들은 대여자 확인이 불가능한 실정이어서 실명전환이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설령 금융기관 직원이나 예금주가 명의대여자를 알고 있어 이들에게 실명확인 절차를 부탁하더라도 지금까지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도용당했던 사람들이 가만 있을리 없다. 특히 실명전환을 하더라도 도명계좌를 통한 분산입금으로 소득세 원천징수를 피해온 대형예금주들은 그동안의 실질적인 탈세액을 추징당하게 되며 도명계좌로 애용돼온 비과세 또는 5% 안팍의 세금우대 저축상품들도 21.5%의 정상 세금적용을 받게 된다.
결국 세금추징대상은 예금주이지만 도명계좌를 제공한 금융기관측도 결코 면책될 수는 없기 때문에 늘어난 세금부담의 소재를 놓고 금융기관과 「큰손」간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금융기관과 거액예금주간 「모종의 합의」를 통해 물밑에서 해결될 수도 있지만 도명거래는 비단 은행과 증권뿐 아니라 보험 단자 투신 등 전 금융기관에 관행화되어 있어 실명제 실시에 따른 「도명계좌」 파문은 자칫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이성철기자>이성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